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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남희 시인 / 내 안의 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8.

박남희 시인 / 내 안의 새

 

 

앗 , 저 새는 왜 갑자기

서른 쪽으로 날아갈까

 

나는 지금 마흔을 한참 지나

예순 쪽에 서있는데

 

저런 철새는 처음 본다고

누가 내 밖에서 자꾸 수군대는데 ,

 

저 새는

서른 쪽을 지나 날아가다가

갑자기 수직으로 급강하하더니

 

풍덩

 

출렁이는 남의 나이 속으로 뛰어드는데

 

치매는 아닐까

누가 내 밖에서 자꾸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데

 

그런데 돌연 또

솟아오르면 어쩌나

 

또 누구의 하늘을 더럽히려고

 

천방지축

수직과 수평의 나이도 까먹은 저 새는

새장인 내 몸의 나이를

우주만큼 늘여놓고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박남희 시인 / 길에 대한 편견

 

 

길을 외롭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길 위에는 하늘이 있고

바람이 있고

낙엽이 있다

 

더구나 그의 몸속에는

그를 사랑했던 것들이 다녀간

둥글고 아늑한 어둠이 있다

 

육체를 지나 마음으로 향해 있던 그 길은

살랑이던 낙엽의 언어와

출렁이던 바람의 춤과

하늘의 깊은 눈매까지를 잘 기억하고 있다

 

길이 외롭게 느껴지는 건

언젠가 그 길을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박남희,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걷는사람, 2019, 107쪽

 

 


 

 

박남희 시인 / 언캐니 벨리*

 

 

 계절이 봄도 아닌데 봄꽃을 피우고 있는 그녀,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불쾌한 골짜기는 그녀를 숨기고 있다 그녀는 늘 불확실의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녀는 거울 공주라도 되는 듯이 거리에다 수많은 거울을 흘리며 다닌다 자신의 웃음을 떡처럼 떼어서 거리에 나누어 준다 거리가 점점 풍성해진다 어쩌면 그녀는 합체와 분해를 자유롭게 즐기며 변신을 꿈꾸고 있는 로봇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거리에 흘린 거울은 수많은 그녀를 낳는다 밤하늘의 별들이 그렇듯이 그녀와 그 옆의 그녀는 쉽게 구분이 되지 않는다 수많은 그녀들은 별처럼 중력을 느낀다 도처에서 자신을 잡아당기는 중력의 실체는 모른 채 스르르 중력에 끌려가기도 한다 그녀의 몸에 섬뜩한 계곡이 있기 때문이다

 

 계곡은 늘 능선을 가지고 있다 계곡과 능선은 파도 같아서 수시로 출렁인다 그 안에서 꽃이 탄생하고 새소리가 들린다 그 계곡에는 메아리가 산다 메아리는 거울의 산물이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예비해둔 곳에 가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풍은 가을이 예비해둔 것이 아니다

 

 언캐니 벨리에 가보라, 작년의 가을과 올해의 가을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오늘의 단풍이 얼마나 붉어질지는 단풍밖에 모른다

 

* 언캐니 벨리(uncanny valley): 로봇을 만들 때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호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혐오감이 생기는 것. ‘불쾌한 골짜기’,‘섬뜩한 계곡’이라고도 부른다

 

《호서문학》 65호.

 

 


 

박남희 시인

1956년 경기 고양시 출생. 고려대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고장 난 아침』,평론집『존재와 거울의 시학』. 현재『시산맥』주간,『창작 21』편집위원.고려대, 숭실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