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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걸 시인 / 어둠이 환하다
직접 보거나 만져 보며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살아왔다.
눈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겪을 때도 쉬지 않고 눈을 움켜잡았고 시력을 완전히 잃어 버리던 그날까지도 두 눈동자를 굴려 보며 결코, 욕심을 놓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눈은 자꾸 함몰되어 검은 눈동자가 허옇게 흉해지고 있지만 이즈음에서 나는 꼭 확인하지 않아도 믿어 버리는 여유를 배웠다.
앞으로 걸으며 뒤를 보아야 하는 그 걸음은 얼마나 불안한가 돌이켜 보면 나의 생은 얼마나 많은 확인을 강요당하며 살아왔었는가
보일 듯 말듯 그때가 답답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쉽게 믿어 버리며 산다는 것에 나의 어둠이 환하다.
손병걸 시인 /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고 살아왔다
시력을 잃어버린 순간까지 두 눈동자를 굴렸다
눈동자는 쪼그라들어 가고 부딪히고 넘어질 때마다 두 손으로 바닥을 더듬었는데
짓무른 손가락 끝에서 뜬금없이 열리는 눈동자
그즈음 나는 확인하지 않아도 믿는 여유를 배웠다
스치기만 하여도 환해지는 열 개의 눈동자를 떴다
손병걸 시인 / 3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없는 것이라고 쉽게 말들을 하곤 해
그러나 창을 연 건 언제나 투명한 저 바람의 손끝이야
막힌 망막을 녹이듯 바람은 어디든지 있는 힘을 다해 틈을 만들곤 해
안과병동 창 너머 씨앗 한 톨 언 땅을 뚫고 파릇파릇 돋아난 키 작은 저 새싹도 그래
이맘때면 저마다의 이름으로 혹은, 이름 없이도 몸을 여는 모두가 새로운 계절이야
손끝으로도 볼 수 있는 온통 푸른 봄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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