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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문규 시인 / 시래깃국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19.

양문규 시인 / 시래깃국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겨울은 점점 깊어가고

  잔바람에도 뚝뚝 살을 내려놓는 늙은 감나무

  열락과 고통이 눈 속으로 젖어드는 늦은 저녁

  아버지와 시래깃국에 밥 말아 먹는다

 

  세상 어떤 국이

  얼룩진 자국 한 점 남김없이 지워낼 수 있을까

  푸른 빛깔과 향기로 맑게 피어날 수 있을까

  또 다른 어떤 국이

  자잘한 행복으로 밥상에 오를 수 있을까

  저렇게 부자간의 사랑 오롯이 지켜낼 수 있을까

 

  어느 때라도 “시래깃국” 하고 부르면

  일흔이 한참 넘은 아버지와

  쉰을 갓 넘긴 아들이 아무런 통증 없이

  공기 속을 빠져나온 햇살처럼 마주앉아 있으리라

 

  세상은 시리고도 따뜻한 것이라고

  내 가족 이웃들과 함께

  함박눈을 밟고 겨울 들판을 휑하니 다녀와서

  시래깃국 한 사발에 또다시 봄을 기다리는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양문규 시인 / 날망집 감나무

 

 

날망집에는 늙은 감나무 한 그루 있다

 

새들이 내려앉을

삭은 나뭇가지 하나 달고 있지 않은

하늘과 땅 사이

오직 마른 외마디 기둥으로 서 있다

 

아침이면 새들이 우짖는

탱자나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텃밭 일구다

저녁이면 어둔 그림자 이끌고

집으로 돌아서는 노인

 

어느새 그 나무 내 속에 들어와 있는가

탱자나무 울타리 떼지어 사는새

날망집 감나무 비켜

또 다른 허공으로 삼킨다

 

 


 

양문규 시인

1960년 충북 영동에서 출생. 청주대학 국문과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학위 취득. 1989년 《한국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식량주의자』. 산문집 『너무도 큰 당신』. 평론집 『풍요로운 언어의 내력』. 논저 『백석 시의 창작방법 연구』 등이 있음. 현재 계간 『시에』 편집주간, 천태산은행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대표. 대전대, 명지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