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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규 시인 / 시래깃국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겨울은 점점 깊어가고 잔바람에도 뚝뚝 살을 내려놓는 늙은 감나무 열락과 고통이 눈 속으로 젖어드는 늦은 저녁 아버지와 시래깃국에 밥 말아 먹는다
세상 어떤 국이 얼룩진 자국 한 점 남김없이 지워낼 수 있을까 푸른 빛깔과 향기로 맑게 피어날 수 있을까 또 다른 어떤 국이 자잘한 행복으로 밥상에 오를 수 있을까 저렇게 부자간의 사랑 오롯이 지켜낼 수 있을까
어느 때라도 “시래깃국” 하고 부르면 일흔이 한참 넘은 아버지와 쉰을 갓 넘긴 아들이 아무런 통증 없이 공기 속을 빠져나온 햇살처럼 마주앉아 있으리라
세상은 시리고도 따뜻한 것이라고 내 가족 이웃들과 함께 함박눈을 밟고 겨울 들판을 휑하니 다녀와서 시래깃국 한 사발에 또다시 봄을 기다리는
수척한 아버지 얼굴에 박혀 있는 검은 별을 본다
양문규 시인 / 날망집 감나무
날망집에는 늙은 감나무 한 그루 있다
새들이 내려앉을 삭은 나뭇가지 하나 달고 있지 않은 하늘과 땅 사이 오직 마른 외마디 기둥으로 서 있다
아침이면 새들이 우짖는 탱자나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텃밭 일구다 저녁이면 어둔 그림자 이끌고 집으로 돌아서는 노인
어느새 그 나무 내 속에 들어와 있는가 탱자나무 울타리 떼지어 사는새 날망집 감나무 비켜 또 다른 허공으로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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