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안민 시인 / 모래시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0.

안민 시인 / 모래시계

 

 

그러니까 이건 난해한 스토리다 시간이 감금된다는 것, 지평선이 허물어진다는 것, 아무리 버둥거려도 네 안에선 꽃이 피지 않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네 운명은 사막을 견디는 것, 주위를 돌아봐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데 너는 수북했겠지 전생에선 낙타와 은빛 여우가 네 심장에 고독 같은 족적을 남겼겠지 뿌옇게 흩날리는 허구들,

 

그건 너인 동시에 나였다 그즈음 거대한 언덕이 또 다른 너와 나로 분열되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불가해한 지대에서

 

바람의 몸을 빌려 이곳에 갇혔다 그리고 윤회, 이제 더는 세포분열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네가 속한 이곳도 블랙홀, 네 원적에선 아직도 푸른 두건을 두른 자들이 몸을 횡단하겠지만 이곳에선 알몸의 안구들이 네 몸을 횡단한다 너는 죄명도 없이 유죄다 눈들이 헉헉거리며 너를 가늠한다 어떤 눈은 탈레반처럼 날카롭다 어떤 눈은 대상처럼 탐욕적이다 그들의 눈 또한 주르륵 흘러내린다 폭염과 침묵 속에서  

 

흘러라 흘러,

삭막한 육신이여,

 

 

너는 사막을 허물어 나의 무덤을 짓는다 이젠 내 차례다 내 몸을 뒤집어 네 무덤을 지어주마

 

눈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난장을, 소멸을, 이해할 수 없는 순환을

 

 


 

 

안민 시인 / 천칭좌-Zubenelgenubi

 

 

. 그대는 밤을 깊숙하게 짚어보며 자신의 별자리로 떠나본 적 있는가?

. 내 문장이 길게 풀어지는 것은 어느 날 문득 내 별자리가 한없이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 짧은 멜랑콜리만 ‘시’라고 예단하는 당신은 여기까지만 읽어도 밤에 당도할 것이다

 

- 1

나는 적도 부근 어둠에서 왔다 한 때는 전갈자리의 집게발이기도 했지만, 늦가을 귀퉁이에 추락하여 겨울을 저울질하며 겨울을 불러들이는 게 내 운명이었다 시원에서부터

 

내가 습득한 것은 울음이었는데

그것은 남색으로 흐르는 강물을 별 속에 풀어 넣기 위함이었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별자리가 모두 달랐으므로 불화에 익숙해지는 것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고 허기는 술렁댔다

 

오랫동안 진창을 독학했고 진창은 사방에 널려져 있었다 그 외의 시간엔 잠들었다 잠은 허기를 속이고 지도를 저장하는 장치이므로

 

- 2

할머니는 별자리를 귀신만큼 정확하게 짚어냈다

 

동짓달 한천에선 어린 별들이 우후죽순으로 자라났다 다시 바람에 실려갔다 그 무렵, 노인과 아이들이 자주 지워졌고

어둠이 내리면 할머니는 장독대에 당신의 영혼을 수장시켜 놓고 주술을 풀었는데, 그런 행위는 별빛을 박제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구약舊約은 할머니였고 장독대는 가계의 이교였다

 

애초부터 신약新約은 나의 문명이 아니었기에 즐겼던 예술은 종이비행기를 접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접을 때는 말을 지워야 했다 날개에서 묻어져 나오는 균형을 수신하기 위한 예의는 묵언이므로

 

때가 오면 팽팽한 균형 위에 내 흐린 영혼을 싣고 본향을 향해 이륙할 거라는 게 나의 신앙이었다

 

진창의 날들 안에서 날개를 접고 있으면 헛배가 부풀던 별자리…

그 속에서 내 사랑이 늙어가고 별의 호흡이 북풍으로 변이되어 숲으로 몰렸다 이에 대해 진술을 하는 것은 회색 고양이와 소녀의 이야기만큼 진부하므로 더는 진술하지 않기로 하겠다

 

문을 닫아도 영하의 산기슭,

그 무렵까지 지구별 주민증을 열한 번 옮겼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동판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했지만, 별자리 계산은 世系 밖의 일이었다

밤에 아버지 곁에 누우면 죽은 식물 냄새가 흘렀고

 

어둠을 사랑한 여신은 늘 귓속에 거주했다 바람 우는 밤이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귀를 앓았고 이불 속은 섣달그믐보다 더 캄캄했으며 몸통은 잠들고 동공은 새벽까지 불면이었다  

내 눈의 충혈은 그때의 습성에 다름 아니다 이 사실을 금세 눈치채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뒷걸음질 치면서 눈동자에 젖은 바람이 번진다

 

아버지는 자주 집을 비웠는데

어느 밤, 예고 없이 흐린 주소로 이적했다 아버지의 눈을 감기기 전, 마지막 바라본 눈동자엔 별자리가 실종되고 없었다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지만 그림자의 손가락은 길었고

 

- 3

이주한 곳은 늘 검은 허공에 닿은 곳,

신의 은총이라 여겼으므로 교회당 옆에서 돌탑을 쌓으며 염불을 찬송했다 친구들이 산 아래 상급학교로 진학을 해도 나는 저 높은 곳만 향했는데…

 

그즈음 강물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별 속으로 스며든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동생의 구슬이 반복적으로 없어졌고, 내 별자리 또한 우주 구석까지 흘러갔다 돌아오곤 했다

 

동생은 물빛자리였기에 언젠가 수몰될 터였다 동생이 바닷가에 위치한 결핵요양원으로 떠난 후부터 문방구에서 야광별을 훔쳐와 앉은뱅이책상 밑에 붙였다 동네 형들에게 길을 물을 수는 있었어도 구원에 대해서는 침묵했기에

 

불을 끄고 책상 아래로 기어들면 동생의 별이 귀뚜라미와 함께 희미하게 울었다

귀속으로 흩어져 날리던 빗물,

어떤 날은 동생의 별자리가 나를 관찰하다 나의 폐에 수상한 색깔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러다 어떤 별은 낡아졌고 또 어떤 별은 추락했고

 

지구별은 진화를 멈추지 않았으므로 진화와 진화 사이에서 늙은 아이들이 무표정하게 결빙되었고

 

- 4

별을 그리는 여자들을 만났다 그녀들 눈 속에도 별자리가 거주했다 나는 그것들을 만지작만지작하였다 나뭇잎이 빠르게 시들었고

 

- 5

병실이 성지였던 날들도 있었다

밖이 안쪽보다 아늑해 보였지만 실은 밖도 안도 경계였다 흰 가운은 규칙적으로 성지순례를 나와 선교하곤 했다

 

겨울밤 달빛이 푸르른 남빛은 마치 밤에 사파이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당신을 고백할 때 푸른색 별을 선물한다면 당신의 시간에 대한 진실성을 우주에 그대로 전달할 수 있으며 순수한 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우스와 여신과 바다의 신이 내포한 병증에 대한 관계이며 완전성입니다

 

물병자리나 물고기자리를 병실에서 만난 적은 없다

그들의 신화는 성지 밖에 존재했으므로 아프로디테만 탐구했다 시와 음악과 미술은 그것의 변종이었기에 병실 벽면에 음악을 판각했고

 

- 6

지구별이 다시 겨울에 진입했다

 

얼마 전, 제 별자리로 돌아간 누군가는 새벽녘까지 술을 퍼마시고는 도로 난간을 향해 빛처럼 질주했다 한다 천체 밖으로의 탈출 같은, 우연한 사고 같은, 혹은 음모 같은 것들이 함께 몰려다녔지만 건네받은 희미한 웃음과 건네준 모호함만이 기억으로 명명되었다 그것도 순간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밤 허공,

보이는 별과 보이지 않는 별에

아름다운 눈이 펑펑 쏟아진다

 

겨울에 몇 번 더 당도하면 내 별자리는 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우주가 설계한 우연에서는 점점 멀어져 가겠지만 신전은 무너지고 또 세워지게 마련

 

별자리는 기억을 먹고 운항하기에

나는 기억되지 못할 테고

 

 


 

안민 (본명: 안병호) 시인

경남 김해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3년 제2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집 <게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