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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기 시인 / 의자
한때는 이 의자도 빛나는 각을 가졌다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사각사각 시간은 각진 사연을 둥글게 깎아 냈다 한순간의 선택이 기울어진 길에 놓여 졌고 나는 그 마음을 모른 척 등진 채 살았다
조금 더 깎아내면 마음에 닿을지도 몰라 제각각 다른 길 걸어와도 아픈 발처럼 모르는 내일이라도 성큼성큼 떠나봤으면 가늘어지는 머리칼이 빠질 때 마다 묵주를 색칠하며 떠나는 밤의 시간은 깊어졌다
수시로 저만큼 떨어진 탱자나무에서 바람이 불었고 의자는 가시에 찔린 듯 묵묵히 웅크렸다 더 이상 각을 세우지도 않았고 이제는 내가 다가가 괴어놓은 시간이 늘어갔다
흔들릴 때마다 흔들린 자리에 더 마음 가는 일 눈앞에서 가늠할 수 없는 햇빛의 각도 뒤로 문을 닫고 떠나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제,
빈 의자에 내가 앉는다
홍철기 시인 / 설레임*
점선을 경계로 벗겨내는 포장지 같은 이별은 없어 자칫 한걸음의 어긋남이 아찔한 아, 눈을 감게 만들지
왼쪽으로 밥을 먹는 나는 같은 손으로 악수를 하고 가본 적 없는 인도에선 인사가 안 될 일 설명서를 읽지 못한 아이스크림은 두 손 가득히 어느 손도 양보할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태양은 가득히 녹아내리는 나 먹는 손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너
갇힌 것 들은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지 이별을 앞두고 단단해진 냉기가 차갑게 쏘아보고 떠난 이후는 중요하지 않아 나는 정박할 수 없어, 절박한 하루로 녹아 버리고 떠나는 순간 설렘을 기억해 얼지도 녹지도 않은 너의 어정쩡한 눈빛 다시 보고 싶어 길가에 두고 올까 고민하는 발걸음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먹듯 점선을 따라 걷지 않는 설레임 없는 하루
*원하는 만큼 취식 후 재보관할 수 있고, 내용물이 묻지 않는다는 장점과 빨리 먹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는 치어팩 타입의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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