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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훈 시인 / 봄방학
성당 강아지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까만 발, 까만 코 어녹은* 손으로 쓰다듬으니 철봉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달려온다 서름한* 바람은 갓바다*까진 갈 수 있을까. 기울*로 흩어지는 진눈깨비 졸업식 끝난 교실처럼 흩날려 가더라도 서무날*에 가지. 매화나무 주윌 도는 강아지. 돌아올 땐 이른 봄은 피하지. 갓털*로 나가는 건 싫으니까.
어녹다 : 얼다가 녹다가 하다 서름하다 : 어떤 대상에 익숙하지 못해서 어색하다 갓바다 : 뭍에서 가까운 바다 기울1 : 밀이나 귀리 따위를 빻아 가루를 내어 체로 쳐내고 남은 속껍질 기울4 : '겨울'의 방언 서무날 : 썰물과 밀물의 차이로 볼 때, 음력 열이틀과 스무이레를 이르는 말 (서무날 바람은 꾸어서라도 분다 : 썰물과 밀물의 차이로 서무날인 음력 12일과 27일경에는 미세기 관계로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는 것을 이르는 말.) 갓털 : 1.씨방의 맨 끝에 붙은 솜털 같은 것 2.새의 대가리에 길고 더부룩하게 난 털 3.머리털이 어수선하고 더부룩하게 위로 솟아 있는 것
현택훈 시인 / 까마귀 소년
내가 잘하는 건 올챙이 잡는 거였다 두 손을 물속에 담가 올챙이보다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 손우물 고인 물에서 헤엄치는 올챙이 여남은 마리 그렇다고 올챙이를 죽이지는 않았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어야 하니까 올챙이를 잡아달라고 하는 친구는 없었지만 별도천 따뜻한 바위에 누워 한나절을 보내곤 했다 물에 앉은 햇빛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일 때는 뱀이 다리 사이로 지나가도 상관없었다
내가 또 잘하는 건 딱지 날리기였다 왼손으로 딱지를 잡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딸지를 날린다 딱지는 정말 멀리 날아갔는데 한 번은 내가 날린 딱지가 원당봉 너머 구름까지 날아갔다 본 사람이 없어서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게 안타까워 뭐라 말할 수 없어서 학교에 가면 온종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또 잘하는 건 정글짐에 숨기였다 내가 정글짐 속에 들어가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했다 나는 풀숲 속에 숨은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었다 해가 저물면 나를 찾는 엄마는 없었고, 저녁별은 내가 본 UFO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정글짐에서 빠져나와 구름사다리로 기어올라 다락방에 들어가 잠들곤 했다
현택훈 외, 『문예연구』 2018년 겨울호, 문예연구사, 2018,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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