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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숙 시인 / 와온(臥溫)
지는 해 보자고 순천만 갈대밭 달려갔더니 해는 막 지고 내 살 네 살 없이 안고 누운 겨울 뻘밭 보았네 덥게 누웠다 하여 와온臥溫이라니 지는 해 받느라 더운 게 아니고 남의 찬 살 보듬느라 따스한 게 온기인가 한 몸을 쪼개어 둘로 떨어진 운주사 와불님네 부처가 꿈꾸는 내세가 있다면 저와 같을 것이라 한 이불 속 누웠다 떠난 인연들 허공에 둥둥 떠 오면 저와 같을 것이라 어느 생에선가 당신을 잃은 줄만 알았는데 당신은 처음부터 여기 있어 만난 바도 떨어진 바도 없다 하니 산다든지 죽는 것도 모두 이 반죽 속이라네 제 몸 떼어 제가 먹는 익반죽 속이라네 나, 살다가 못내 사무치는 게 있으면 불 꺼진 겨울 순천만 찾아가려네 당신은 더웁게 누워 나를 맞이하기 바라겠네.
함태숙 시인 / 우리들의 오랜 구호
아까부터 저 여자는 티벳 식 절을 하고 있다 그녀의 구호는 달라이 라마 한 쪽에선 파룬궁 학살을 고발하고 또 한쪽에선 줄기세포 진상규명 이 모든 풍경을 배경으로 청와대 관광객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공간을 동시에 점유하고 있는 시대와 반시대 인간과 비인간 과거와 미래의 얼굴을 찍고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순간의, 저 신성한 표정들 오월의 볕처럼 그것은 밝다, 가볍다 중국 남방어의 왁자함 속에서 먹고 놀고 왔다 가는 모습은 한 잎으로 매달렸다 손을 놓는 버드나무 한 가지의 잎맥처럼 나무의 전체를 역사의 전체를 싣고 있어도 존재는 무게가 없다 가령, 폭우에 찢기거나 벌레에 씹히는, 한 잎의 비유로써 우리가 어떠한 고난도, 의당 자연의 한 형태로 수락한다면 저 죽은 지렁이와 그것을 끌고 가는 바쁜 일개미 그와 같이, 팔랑팔랑 삶이 아름답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비처럼, 아까부터 저 여자는 티벳 식 절을 하고 있다
함태숙 시인 / 뼈 해장국 드는 당신께
뼈 해장국 한 그릇 수북하니 선사시대 패총 같은 잡뼈를 받아 놓고 돼지라면 암퇘지 등뼈 가랑이 벌리고 핥아 먹고 빨아 먹고 살점 발라 먹는 그 입술이 쿠니링구스 당신은 죽은 여자와 몸을 섞는 것이다 내장의 부드러운 융모 속 남김없이 빨려 들어가 당신 몸의 어느 찬 주머니엔가 숨겨 놓을 꽃씨만 있다면 어느 주검을 마다하겠는가 시든 몸이더라도 떨리는 내세 바람 드나드는 무릎 뼈 오므리며 나는 힘껏 더운 진액 받아 삼키겠다 어느 먼 초야에 당신에게 이를 그 방편으로 목구멍에 꽃술 오른다
함태숙 시인 / 부르스를 추고 싶다
시간이란 이제 보니 촉각 같은 것 왜 견뎌주지 못했을까 디스코를 출 만큼 청춘에 몰입하지도 부르스를 출 만큼 인생에 연민도 없던 시절 쾌속선 한 척 빠르게 지나보낸 물과 같으리라 생각했지만 늙는다는 것은 하중을 싣는 곳만 모질어져 긴 쇳소리를 내는 철길 두 철로 사이 만져지지 못해, 나의 중심은 비었다 왜 견뎌주지 못했을까 머리 위 조명을 비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암전이었던 그 많은 나이트 나이트들을 이제 보니 시간이란 오랜 키스 같은 것인데 영혼이 자신의 물질성을 이해할 때까지 조금만 더 천천히 더듬어 달라 전신을 휘감은 부르스처럼 치렁치렁 엉키며 흐느끼며 나의 모든 맛을 그대에게 주고 싶다 영업, 시간이 끝나도 우리가 한 몸으로 빙빙 돌 수 있게 어느 나이트에서건 어느 별자리에서건
함태숙 시인 / 화이트 크리스마스
낙태에 유산에 사산에, 범벅된 피와 불순물 짓이긴 태아의 형상으로 신발들은 학살의 증언을 계속 하고 있었다 홀로코스트 기념 유리 관 이천 년 전, 숨구멍도 채 안 닫힌 사내아이 머리통처럼 비극으로 한 몸이 된 신발들은 베들레햄에서 목 잘린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유리 자궁에 죽음에 가려진 비탄과 열망에 찬 生과 존재의 낱낱의 통증을 담고 있나니 세상에 올 때는 홀로코스트의 신발을 신고 오리라 닳은 구두 뒤축과 해진 헝겊 신 그 모든 최후의 진실로, 나는 오리라 종말처럼 부활에는 그대 영혼을 신고, 매일매일 그대에게서 태어나는, 신성한, 죽음 보라 홀로코스트의, 먼지 앉은 神발들을 지금, 그대가 신고 있는, 흰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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