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오현주 시인 / 냉장고 속에는 우주가 있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1.

오현주 시인 / 냉장고 속에는 우주가 있다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온 위스키가

얼얼하게 취해 문에 기대어 있다

태평양을 지른 옥수수는

하모니카로 캘리포니아 드림을 불고

북대서양에서 노닐던 참치는

철재통에 갇혀 바다를 그리고 있다

텃밭에서 갓 올라온 상추는

쌉싸래한 향을 뽐내며

살가운 약비 머금은 채

풋고추와 키재기라도 하고 싶은 걸까,

참살이라고 우쭐거린다

 

국적이 다른 이력들이 칸칸이 실린 채

산소를 나누어 마시고 있다

 

닫힌 문에는 지구를 돌던

코카콜라자리 별이 떠 있다.

 

* 문학공원 6월의 베스트 시

 

 


 

 

오현주 시인 / 물집

 

 

밤늦도록 술병을 비워내고도

몇 방울 윗 입술로 옮겨가 물집을 지었다.

저 집안 수십 개나 방울방울 불어났다.

뜨겁게 끈적이는 액체괴물 가족

백내장 낀 눈구멍만 커지는

집주소가 잠시 있을 뿐

철거를 끝내면 당장 지워지고 말테지

그러나 투명한 물방울 같은 사람이

가슴 한복판 집을 짓고

허물어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알고 있다.

안으로 고였다가 울컥 새어나오는 아픔

아픔을 떠올리다 그 부력을 타고

심장보다 높이 풍선 같은 집 짓는 밤

짓무른 잠의 체액을 채웠다.

터트리면 흘러 늑골마저 녹아내릴 것처럼

말캉하게 팽창한 홍시 익어가는 가을

며칠 동안 까치밥 하나 바치지 않고

물집은 아물었으나

부표하는 계절 내내

거품처럼 일어서는 것들을 바삭 말려야 한다.

 

 


 

오현주 시인 & 칼럼리스트

월간문학공간 시부분 등단. 시와글벗문학회 동인. 선진문학작가협회 회원. 선진문학(선진문협)소록도 시화전 출품. 전남방송 문화사회부 3부장. 전남방송 칼럼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