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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 시인 / 눈사람
그대가 건네준 파란 목도리를 두른 채 술을 마시는데 겨울이 왔다 백년 후의 십이월 진눈개비 같은, 그즈음 독재국가 에선 어린 여자를 사랑한 남자 먼 길을 떠났고 안녕하지 못한 어느 시인이 본적을 파냈고 매혹적인 유부녀는 이혼을 모색하였다 낙타는 제 눈물을 마시며 저녁 사막을 횡단하였고 난 이유도 없이 어두웠 고 …입이 있지만 말 없음을 용서바랍니다 목 이 참 따뜻하여 사랑하지 않아도 되어 슬펐고 슬픔이 아득하게 차가워 쉽게 녹지 않을 거라 여겨 불행하지 않 았다 목이 포근하였으므로 비윤리적이었고 몰락에 집중하였 고 내 유성만 바라보았다 겨울은 깊어 그대 건네준 목도리 빛 깔처럼 본향 카시오피아는 푸른 바람 펄럭였고 난 좀체 녹지 않았고 …아, 눈이 있지만 바라보지 못함을 용서 바랍니다 그 러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목 이외엔 모두 가난하였다 …내가 여전히 둥글게 보입니까 자주 질문하였고 그러면 밤하늘 카 시오피아는 셀 수 없을 만큼 나를 낳았다 하얗게 흩날리던 내 영혼이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그대 눈 안에서도 밖 에서도 목도리 포근한 올처럼 평화로웠는데 나는 아무도 몰래 해빙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무도 몰래 누군가 내 몸을 버리고 있었다
안민 시인 / 6079
1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 승강장엔 내 몸보다 늘 바람이 먼저 도착한다 내가 바람을 밀고 다니는 까닭이다 내 몸속을 분주히 들고나는 사람들 표정이 창백하다 문명이 지하에 길을 내고 쇼핑센터를 건립한 뒤부터 매일 이마에 목적지를 붙이고는 두더지처럼 땅속을 위태롭게 헤맨다
2 빗물 냄새 땅속까지 번지던 날이었다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 사자死者의 음성인 듯 흘러왔는데 치매 앓는 노인 손을 꽉 붙잡은 채 안전선을 넘는 여자가 보였다 눈동자 속엔 마른 안개꽃 자욱했다 노인은 우는 것처럼 희미하게 웃고 있었고 순간 나는 끼이익- 미친 듯 울부짖으며 눈을 감았다 날카로운 비명들, 넋 잃은 눈빛 속에서 나는 부르르 떨기만 하였다 그날 사람들은 사지가 풀린 내 몸을 이동시켜 물감 모양 끈적이는 잔해를 씻기고는 운항을 쉬게 하였다
3 눈앞이 차츰 환해진다 오늘도 수없이 캄캄한 구간을 지나온 지친 몸, 마지막 승강장에 막 들어서려 하고 있다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 아, 그런데 기둥 뒤 얼비치는 그림자, 모자를 얼굴 아래까지 푹 내리고는 나를 향해 제 그림자를 던지는,
나는 광인처럼 몸서리치다 뜨거운 김을 품어내며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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