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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민 시인 / 눈사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2.

안민 시인 / 눈사람

 

 

그대가 건네준

파란

목도리를

두른 채 술을 마시는데

겨울이 왔다 백년 후의 십이월

진눈개비 같은, 그즈음 독재국가

에선 어린 여자를 사랑한 남자 먼

길을 떠났고 안녕하지 못한 어느

시인이 본적을 파냈고 매혹적인

유부녀는 이혼을 모색하였다

낙타는 제 눈물을 마시며

저녁 사막을

횡단하였고 난 이유도 없이 어두웠

고 …입이 있지만 말 없음을 용서바랍니다 목

이 참 따뜻하여 사랑하지 않아도 되어 슬펐고 슬픔이

아득하게 차가워 쉽게 녹지 않을 거라 여겨 불행하지 않

았다 목이 포근하였으므로 비윤리적이었고 몰락에 집중하였

고 내 유성만 바라보았다 겨울은 깊어 그대 건네준 목도리 빛

깔처럼 본향 카시오피아는 푸른 바람 펄럭였고 난 좀체 녹지

않았고 …아, 눈이 있지만 바라보지 못함을 용서 바랍니다 그

러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목 이외엔 모두 가난하였다 …내가

여전히 둥글게 보입니까 자주 질문하였고 그러면 밤하늘 카

시오피아는 셀 수 없을 만큼 나를 낳았다 하얗게 흩날리던

내 영혼이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그대 눈 안에서도 밖

에서도 목도리 포근한 올처럼 평화로웠는데 나는

아무도 몰래 해빙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무도 몰래 누군가 내 몸을 버리고 있었다

 

 


 

 

안민 시인 / 6079

 

 

1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

승강장엔 내 몸보다 늘 바람이 먼저 도착한다

내가 바람을 밀고 다니는 까닭이다

내 몸속을 분주히 들고나는 사람들

표정이 창백하다

문명이 지하에 길을 내고 쇼핑센터를 건립한 뒤부터

매일 이마에 목적지를 붙이고는

두더지처럼 땅속을 위태롭게 헤맨다

 

2

빗물 냄새 땅속까지 번지던 날이었다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

사자死者의 음성인 듯 흘러왔는데

치매 앓는 노인 손을 꽉 붙잡은 채

안전선을 넘는 여자가 보였다

눈동자 속엔 마른 안개꽃 자욱했다

노인은 우는 것처럼 희미하게 웃고 있었고

순간 나는 끼이익- 미친 듯 울부짖으며

눈을 감았다

날카로운 비명들, 넋 잃은 눈빛 속에서

나는 부르르 떨기만 하였다 그날

사람들은 사지가 풀린 내 몸을 이동시켜

물감 모양 끈적이는 잔해를 씻기고는

운항을 쉬게 하였다

 

3

눈앞이 차츰 환해진다

오늘도 수없이 캄캄한 구간을 지나온

지친 몸,

마지막 승강장에 막 들어서려 하고 있다

“안전선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십시오”

아, 그런데 기둥 뒤 얼비치는

그림자,

모자를 얼굴 아래까지 푹 내리고는 나를 향해

제 그림자를 던지는,

 

나는 광인처럼 몸서리치다

뜨거운 김을 품어내며 운다

 

 


 

안민 (본명: 안병호) 시인

경남 김해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3년 제2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집 <게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