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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우남정 시인 / 죽은 발톱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2.

우남정 시인 / 죽은 발톱

 

 

무엇에 걸려 뒤집히는 비명, 눈물이 쑥 빠진다

뽑히다 만 뿌리

살갗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다

온종일 발품을 팔다 지쳐 돌아온 날

피멍 삼킨 그 발톱이다

 

가만, 그 밑에 보드라운 무엇이 있다

고물고물 숨죽인

보얗고 여린 꽃잎 한 장

반달 같은 발톱에 새순이 돋았나

들뜬 보굿을 밀어올리고 있다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이야기

한겨울 개울가

곰 한 마리 발견한 사냥꾼, 활을 쏘았대

곰이 그대로 서 있더래

다시 활을 쐈는데 그대로 서 있더래

가까이 가보니

어미 곰은 커다란 바위를 껴안고 죽어 있었더래

그 밑에 새끼 두 마리 곰실곰실 먹이를 찾고 있었대

 

죽어서도 덜컹거리며 기다리고 있었구나

눈을 질끈 감고 죽은 발톱을 뽑아낸다

자줏빛 등이 품고 있던

어린것 아장아장 걸어 나온다

 

세상을 지켜낸 힘은 저 묵묵한 마중에 있었다

 

 


 

 

우남정 시인 / 용설란

 

 

일생에 딱 한번 꽃을 피운다

 

한 저녁이 또 그 가시 잎에 맺혀 있다

 

사막에서 잎을 틔우는 일은

살아낸 밑동부터 한 잎 한 잎 버리는 것이다

버린 한 잎의 제 살을 발라먹고

버린 한 잎의 제 결로, 제 눈물을 핥아먹고

 

그 눈물만큼 깊어가는 갈증으로

 

지구 저편으로 걸어간다

 

 


 

우남정 시인

충남 서천에서 출생. 2008년 다시올문학 등단, 201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돋보기의 공식」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구겨진 것은 공간을 품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저녁이 오고 있다』가 있음. 제16회 김포문학상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