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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관영 시인 / 금분세수 1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8. 22.

윤관영 시인 / 금분세수 1

 

 

무림에, 金盆洗手라는 것이 있다. 널리 친구들을 부른다. 은원에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獨紋兵器를 내려놓는다. 이룬 武威의 비급을 공개하고 대야에 손을 씻는다.

 

文과 武가 무에 다르랴. 원이 크다면

금분세수를 하기 전에 죽여야 합니다.

 

詩人 윤관영은 『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 2008)과 『오후 세시의 주방편지』(시로여는세상, 2015)를 내려놓습니다. 비급이랄 것도 아니어서 부끄럽습니다. 생각커니, 나의 독문은 생존이 준 손금이었고, 애병은 食刀였습니다.

 

저는 지금 전골냄비에 손을 씻습니다.

 

作亂으로 여기지는 말아주십시오. 저 좋아 못 살겠는 詩 내려놓기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과히 사랑해서 내려놔야겠습니다. 그게 지랄입니다. 기록을 거절당한 제 초식이 부끄럽습니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그나마의 성과를 넘어설 자신이 없다는 겁니다. 타개의 길은 보이지 않고, 전, 지리멸렬이며 지지부진입니다. 시마에도 들지 않는 걸 보면 전, 진짜가, 아닌, 모양입니다.

 

너무 사랑해서, 사랑은 진부합니다. 쓰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믿고 싶습니다. 내려놓자니, 달아오른 냄비를 쥔 듯 겁이 와짝 납니다. 시를 목숨으로 사랑해 키스로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시의 거웃이라도 하나 뽑아서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겁 많은 좀팽이였습니다. 허나 이 지지부진과 지리멸렬을 감춘 채,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쓰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는 저를 미는 힘이 되지 못합니다. 文林을 향해 소리쳐 봅니다. 시야, 보지 껌 씹는 소리 말고 꺼져라!

 

청탁하는 어리보기 편집자는 없겠지요? 상 주신다면 금분세수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것으로 알고, 달게 독주를 마시겠습니다. 원이 있는 자, 얼른 오시오. 금분세수를 한 자는 죽일 수가 없소. 나는 줄행랑을 치오. 시여, 좆 까라!

 

문과 무가 무에 다르랴!

 

 


 

 

윤관영 시인 / 금분세수 2

 

 

무림사에 종종 어이없이 죽는 고수자가 있었다.

 

오직, 무에 미친 자. 일생 이룬 내공을 폐하고 새롭고 정순한 내공으로 채우려는 자. 정적이나 사문의 계승자는 그 때를 노렸다. 그런 위험천만을 알면서도 스스로 내공을 폐하고 다시 채우려는 시도를 하다니,

武狂을 넘어선 자다.

 

항아리는 비워야 거꾸로 세울 수 있다.

비워야 내부를 닦을 수 있다. 바닥도 닦을 수 있다. 똥자바리도 닦을 수 있다.

비워야 그늘에 둘 수도 있고 거풍도 시킬 수 있고, 재정비가 된다.

일단, 다, 게워내야 한다. 고수자라고 비운 내공을 채우는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다.

 

비워야 한다, 말려야 한다.

고수가 아닌, 하수자가 내공을 폐하다니

다만, 덜 채워진 통은 비우기가 쉽다.

 

정적도 없고, 암투도 불러오지 않는 허접한, 잡다한 내공을 가진 이가 있다.

그가 내공을 폐한다. 자식, 겁나게, 겁나는 모양이다.

 

문과 무가 무에 다르랴.

항아리는 거꾸로 세워야 비워진다.

 

<현대시학> 7월호

 

 


 

 

윤관영 시인 / 부엌의 마음

 

 

접대도 어렵고 대접도 어렵다

무엇을 넣는 것도 어렵다

아무것도 안 넣는다면? 백비탕!

 

그 시간?

그 불 조절?

그 안절부절 수증기?

茶의 물맛 같은, 종내 바탕?

마음 졸이는 그 시간, 탕이 졸겠다 白飛다

 

그저 두려운,

대접에 무엇을 담기란, 아니 담기란

 

<시로여는세상> 봄호

 

 


 

 

윤관영 시인 / 식은 아침

 

 

장사가 덜 된 것보다, 남은 밥이 더 화 난다

 

날아가지 않는 밥

첨부가 되지 않는 밥

밥은 맨손으로는 들지 못하는 뜨건 아날로그,

던진다고 저 검게 마른 아이들에게 가서 놓이는 게 아니다

한 달에 삼 만원이면 되는 유니세프

밥은, 아날로그

어머니가 싸고 싸 차에 실어주듯

비닐에 싸 버린다 멀쩡한 밥을

김은 첨부되지 않는다

영양가는 첨부되지 않는다

이 마음, 안달재신도 첨부되지 않는다

찰흑미를 섞은 이 김 나는 밥을 TV 속 아이에게

멕일 수가 없다

전화 한 통이면 내 목소리는 디지털로 바뀐다는데

삼 만원이라는데,

몇 아이를 먹일 수 있다는데

 

난, 그저, 꼽짝꼽짝, 어미처럼 싸서

버리는.

매일 버리는,

 

 


 

 

윤관영 시인 / 밥에 뜸이 드는 시간이면

 

 

괜히 뻘쭘해지면 주방으로 간다

 

바람이 병풍문을 흔들어 대면 채 썰어 묵밥을 한다 앞니로 끊어 먹는다 햇살이 하도나 밝아 묵은 차양의 때마저 환하면 콩나물을 무쳐 막걸리 잔을 든다

 

이게 다 날씨 탓! 주방의 나도 사는 꾀 하나는 있어야 해서, 눈발 날리는 날, 눈발도 고조곤히 못 앉아 있는 날림일 때 돼지 껍데기를 볶아, 볶아도 맵게 볶아 소주를 붓는다 손에 닿는 곳에 있어야 친구고, 그래서 소주는 이미 근친 당신 탓은 아니고 비 오는 날엔 손님도 뜸하고 생각은 더 나고 그래서 자동으로 주방에 들어 괜히 준비해두었던, 올갱이국을 끓이고 그럴 땐 아욱을 넣는 사치마저 벌이고, 이 땐 동동주가 좋고 이게 다 날씨 탓 내 몸 탓 이런 사치마저 없으면 어떻게 주방의 시절을 견디나, 주방 덕에 밝아진 귀는 고양이 발소리마저 밟아서는 안주를 덜어 쪽문으로 간다 주방 쪽문은 내가 세상을 내다보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 자리

 

괜한 자리,

뻘짓 하는 그 자리

 

<시에> 봄호

 

 


 

윤관영 시인

1961년 충북 보은 출생. 1996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나는 직립이다」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 2008)이 있음. 현재 『미네르바』 자문위원. 2009년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현재 망원동에서 아들과 함께 식당(父子부대찌개)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