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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기현 시인 / 눈물 모르는 눈매와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5.

조기현 시인 / 눈물 모르는 눈매와

 

 

날아 내리네!

윤슬 깔린 겨울 하천에

어제처럼 또 한 쌍

오리가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지난 3월 20일 만경강에서 포획하여 ‘위치 추적기(GPS)’를 부착한 청둥오리 2개체 중 1개체가 국내로 다시 돌아온 것을 확인하였다. 해당 개체는 이후 경기도 이천 및 강원도 철원, 북한지역을 지나 6월 8일에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인근 송화강에 도착하였고, 이곳에서 여름을 지낸 후 지난 11월 8일 겨울을 나기 위해 남하하기 시작하여 11월 22일 경기도 이천시 복하천에 도래한 것으로…….

 

날아오르고 또 날아 내리는

벅찬 날갯짓, 하염없는 물질

떠다니고 떠나가며 그렇게

수 천리 하늘과 땅을 오가야 하기에

외려 눈물 모르는 저 눈매,

밤이 들어서야 비로소

얼음 칼이 박힌 듯 시린 것을

갈밭에 옴츠리고서

저 혼자 품으로 품어 녹일

저 붉은

두 발

참말로 어이 저리 닮았나!

피난길 만삭인 몸으로 나섰던

노당댁(宅) 내 어매

동지섣달 수돗가에 앉아

김장을 하던 하숙집 아낙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맞으시던

글썽이던 그 눈매,

엄동이면 외려 화끈대던

그 두 손과

 

 


 

 

조기현 시인 / 너희가, 보고 있다

 

 

진도 팽목항 앞 바다는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도 밤새 진저리를 쳤다.

 

저 바다 밑

어둡고,

깊고,

차가운,

 

숨이 막힌

 

그곳에, 아직도 잠들지 않고

떨리는 두 손 맞잡은

너희가

 

보고 있다.

 

간간이 별똥별들만이

너희를 깨우러 몸을 던지지만

 

세월은 멈추어 있고

시간만이 지금도 가고 있다.

 

 


 

 

조기현 시인 / 사과 속의 새

 

 

사과는

지금 접시에 놓여 있다

 

나무가 그립지도 않은지

저 혼자 풍선을 분다

 

소풍을 앞둔 날

잠 못 드는 아이인가

 

섬 처녀 베아트리체*

가슴 부푸는 칠월처럼

 

두 언덕이

날개를 펼쳐올린다

 

날려면

더 가벼워져야지

 

씨앗으로, 눈을 감고

어둠보다 더 깜깜해져야지

 

날개 꺾이고 춤사위 잘리어도

나무가 그랬듯 다시 손 벋어야지

 

칼날이 닿자

한층 달아오르네, 너의 뺨

 

지금 그 마음속엔

어떤 새가 날고 있나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마리오의 연인.

 

 


 

조기현 시인

1962년 대구에서 출생. 대구 상고, 경북대학교 졸업. 1983년 <시와 해방> 동인으로 작품 활동하여 1986년 《시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길들의 여행』(1989) 등이 있음. 그 외 문학평론 활동. <시와 해방>동인(1983). 계간 《사이펀》 편집위원. 경주문인협회 회원.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이사. 경주고등학교 국어 교사(2021학년도를 마지막으로 명예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