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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숙자 시인 / 검은 코로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1.

정숙자 시인 / 검은 코로나

 

 

어딘지 모르는 시간 속으로 가라앉는

보고 듣고 마르다가 하얘져 버리는

 

이 시대 어머니들

 

눈 떴지만, 응시하지만 보이지 않는

태양의 가장자리 마구 찢어져

기러기 한 마리 날지 않는

골목― 골목―

가난한 어머니들

 

하늘이여

하늘이여

 

목메어 부르면 하느님도 힘드실까

차마 기도조차 올리지 못하는

 

이 시대 어머니들

 

아깝고 아까운 아들과 딸들

 

 


 

 

정숙자 시인 / 몽돌

 

 

나는 이미 유골이다. 나는 이미 골백번도 더 유골이다.

골백번도 더 자살했고 골백번도 더 타살됐고 그때마다 조

금씩 더 새롭게 어리석게 새롭게 어리석게 눈떴다.

 

파도야, 보이느냐?

파도야,보이느냐?

 

나는 항상 유골이다. 살았어도 죽었어도 떠도는 유골이

다. 나는 골백번도 더 죽었고 골백번도 더 눈뜰 수밖에 없

었던 유골이다. 나는 늘 어리석어서 죽었고, 어리석은 줄

몰랐다가 죽었고, 어리석어서 살아났다. 더 죽을 이유도

없는데 죽었고 더 살 필요도 없는데 살았다.

 

유골에게 걸칠 거라곤 바람뿐

유골에겐 바람많이 배부를 뿐

 

그래도 나는 저 놈의 태양을 사랑하노라. 저놈의 태양

말고 무엇을 또 사랑할 수 있단 말이냐. 파도야, 그리고 너

를 사랑하노라. 파도야! 함께할밖에 없노라.

 

 


 

정숙자 시인

1952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철학과를 수료. 1988년 《문학정신》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감성채집기』, 『정읍사의 달밤처럼』, 『열매보다 강한 잎』과  산문집 『밝은음자리표』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