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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시영 시인 / 업어준다는 것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6.

박시영 시인 / 업어준다는 것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킁킁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 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왔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박시영 시인

2004년 《시와 상상》으로 등단. 2013년 시집 『바람의 눈』 출간. 2018년 <최하림 시의 현실인식 연구>로 광주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