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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초혜 시인 / 고향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4. 26.

김초혜 시인 / 고향

 

 

언덕에 살구꽃에

고요가 스며들고

밭두렁 위

어미 소는 아기 소를 달래고

바람에 새소리 흩어지고

하루 종일 기쁨을 누려도

탓하는 이 없는 곳

풀 줄기에다

들꽃을 꿰어 쥐고

개울을 팔짝 건너면

큰 느티나무

그 느티나무 하래

봄꿈에 젖어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영원히 거기 있어 주어요

어머니

 

 


 

 

김초혜 시인 / 자화상

 

 

오늘은 오늘에 빠져버렸고

내일은 내일에 허덕일 것이다

결박을 풀고

집을 떠나려 하나

벗을 것을 벗지 못하는

거렁뱅이라

 

 


 

 

김초혜 시인 / 그리운 집

 

 

사람으로 올 때

지고 온 보따리에는

평범한 나날이 들어 있었다

우리가 도달하여 지나가게 될

이정표도 있었다

밤과 낮이 있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절도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모으기 시작하자

그 자체가

하나의 집인 것을 알게 되었다

방황하는 영혼을 쉬게 하는

집 속에는

태어남과 삶, 죽음과 매장

분노와 고통과 무지와 권태가

이웃하며 살도 있었다

사람이 이룬 최상의 것은

그래도 그곳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김초혜 시인 / 안부

 

 

강을 사이에 두고

꽃잎을 띄우네

 

잘 있으면 된다고

잘 있다고

 

이때가 꽃이 필 때라고

오늘도 봄은 가고 있다고

 

무엇이리

말하지 않은 그 말

 

- 『사람이 그리워서』 시학.

 

 


 

김초혜 시인 (金初蕙)

1943년 충북 청주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08 제20회 정지용문학상. 1985 제18회 한국시인협회상. 1984 제21회 한국문학상 수상. 한국현대시박물관 관장. 한국여류문학회 이사. 가정법원 조정위원. 한국문학 편집장 역임. 시집으로 《떠돌이 별》, 《사랑굿 1》, 《사랑굿 2》, 《사랑굿 3》, 《세상살이》 등이 있으며, 소설가 조정래 작가와 부부 사이다. 월간 한국문학 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