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영 시인 / 호박 등신불
호박오이, 호박가지. 호박고구마 그러니까 호박은 다되는 절대 교배자 일인 당백, 무한 빨판이다 해거리를 안해도 병충해가 없는 수박은 호에 접붙인 결과다 수박인 호박, 고래로 호박꽃에 코 박고 들어간 게 코끼리다 고래서 코가 늘어났다 그 귀는 호박이 유전자다 호박꽃을 우습게 보고 난장치다 빨려 들어간 게 나다 우수가 빨려 들면서 이승을 향한 애원의 눈빛이 나의 좌경적 성향이 되었다 이마가 넓어지면서 눈썹이 순해졌다 초년운이 바뀌고 귀가 늘어났다 삼복염천에, 잎사귀가 누어질망정 빈 줄기를 세우는 게 호박이다 그지없이 기고 타오르는 게 호박이다 제 봄으로 제 그늘을 만드는 호박 제 속에 저를 심는 호박 나는 호박 관영, 절망할 때 조차 전진한다 밤에는 꽃 닫는 호박, 줄기도 모르는 새 호박을 달고 지형에 상관없이 내달리는 게 호박이다 홥가관영이다 시렁 위, 똥구멍 통풍되게 모셔지는 부처 호박 소리는 늘어져 본 적 없는 앞에서 나는 것 끊길망정 놓지않는 빨판 교배는 교배인 줄 모르게 진행된다 나는 나를 믿고 돌진돌진돌진 세파를 덮는, 호박관영
내가 나에게 거수례를 붙인다 다양배액!
- 『시산맥』 2011년 겨울호
윤관영 시인 / 몽당싸리비
바람 맑아 칼칼한 날, 팥죽솥을 걸었네. 그늘엔 두툼한 눈덩이 쌓였는데 통장작에 앉아 불을 지폈네. 아랫도리부터 된통 한 번은 비틀어 올라가야, 끝장을 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지랑싸리비 막대기가 된 싸리비, 묶은 칡은 풀리지 않았네. 발매치와 대솔장작을 몸 위에 얹고서, 신문지 한 장으로 제 몸을 불사르는 비움 또깡또깡 끊어지면서, 쉬 재가 되었네. 젖은 부지깽이도 그을리며 불타올랐네. 맑은 재 된 다비식이 팥죽 속에 새알을 남긴 듯해 보리밟는 걸음으로 주걱질을 했네. 뭉근한 불땀 속에 나무주걱질은 귓바퀴를 닮아 귀신의 길을 알 듯도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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