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시인 / 일몰의 겨울 연밭
일몰에 폐사지에 올라 갔다가 빈터에서 깨진 기와 조각들을 보았다 연꽃 무늬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조각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고르느라 탑은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다 날이 어두워져 내려오는 길에 올라갈 때 못보았던 연밭을 보았다 논둑 길 아래 펼쳐져 있는 겨울 연밭에선 페허의 냄새 같은 바다 비린내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허공에 말라버린 그대로 오그라든 연꽃의 모습이 일몰의 빛에 비쳐 등신불이 되려다 타다 남은 흔적 같았다 연줄기가 허공에 얼기설기 그어놓은 선으로 어떻게든 버티는 일몰의 겨울 연밭, 그러나 나는 폐사지에서 골라온 작은 기와 조각들을 손에 쥐고 서울에 올라가 그것을 어떻게 책상 위에 장식할지 잠시 고민했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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