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오 시인 / 타워크레인
뜬눈으로 홀로 도시를 지킨다 초승달이 조용히 기울어지고 유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차곡차곡 쌓여진 타워에서만 크레인이 고정되고 걸음걸음 외롭게 올라간 천 길 낭떠러지 360도 회전하는 것은 세상을 두루두루 보라는 뜻 사소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 간혹 강풍에 휩쓸리지만 안간힘을 쓰며 감춰둔 버팀목을 되뇌이면서 주문을 건다
평형추는 끊임없이 기울어지는 마음을 잡아주고 바람에 숱하게 흔들려왔지만 지구를 지탱하는 두 다리처럼 균형추가 있어 꿋꿋하다 운전실의 반 평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차지한 영토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어서 평생 마련한 집 한 칸을 이곳에 심어두고 스스로 줄타기를 해왔다
도시는 젖먹는 아이처럼 쑥쑥 자라나서 새벽은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밤 잠들지 못하는 것은 실은 잔바람에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잠들지 못하고 새벽마다 뒤척이는 아버지
― 『시와소금』, 202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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