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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원오 시인 / 타워크레인

by 파스칼바이런 2022.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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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오 시인 / 타워크레인

 

 

뜬눈으로 홀로 도시를 지킨다

초승달이 조용히 기울어지고

유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다

 

차곡차곡 쌓여진 타워에서만 크레인이 고정되고

걸음걸음 외롭게 올라간 천 길 낭떠러지

360도 회전하는 것은 세상을 두루두루 보라는 뜻

사소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말라는 것

간혹 강풍에 휩쓸리지만 안간힘을 쓰며

감춰둔 버팀목을 되뇌이면서 주문을 건다

 

평형추는 끊임없이 기울어지는 마음을 잡아주고

바람에 숱하게 흔들려왔지만

지구를 지탱하는 두 다리처럼 균형추가 있어 꿋꿋하다

운전실의 반 평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차지한 영토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어서

평생 마련한 집 한 칸을 이곳에 심어두고

스스로 줄타기를 해왔다

 

도시는 젖먹는 아이처럼 쑥쑥 자라나서

새벽은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밤 잠들지 못하는 것은

실은 잔바람에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잠들지 못하고

새벽마다 뒤척이는 아버지

 

― 『시와소금』, 2021. 여름.

 


 

이원오 시인

전북 장수에서 출생. 2014년 《시와 소금》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2018년 시집『시간의 유배』 출간. 단국대 행정학박사. 현재 용인문학회 부회장 겸 《용인문학》 편집장, 한국작가회의, 시와 소금 작가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