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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홍종빈 시인 / 꿈의 비단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6. 10.

홍종빈 시인 / 꿈의 비단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겨우 몇 뼘 남지 않은

저물녘에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길은 내 마음을 거쳐가고 있다는 것을

그 길에 피고 지는 것이 장미꽃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길을 적시고 가는 것이 단비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길을 훑고 가는 것이 봄바람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길섶에 우는 것이 뻐꾸기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원점에 가 닿는다는 것을

 

일생을 두고 한결같이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맸던 꿈의 비단길이

내가 나날이 허둥거리며

허투루 밟고 지나온 그 길임을

땅거미가 내릴 때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나마 어두워지기 전에

 

 


 

 

홍종빈 시인 / 씨 뿌리는 봄날의 풍경

 

 

낙동강 강가에서

마흔을 갓 넘긴 상복의 여인이

유골을 뿌리고 있다.

4월의 햇살에 꽃가루처럼 흩어지는 유골,

수면에 잠시 수피水皮로 떠돌더니

물결 속으로 빨려든다.

가슴에 고여 있던 눈물이

비로소 긴 강물이 되어 흐른다.

 

낙동강 둔치에서

일흔이 훨씬 넘은 농부가 허리를 굽힌 채

씨앗을 뿌리고 있다.

농부의 굽은 등허리 위로

4월의 햇살이 꽃가루처럼 쏟아지고 있다.

농부의 손에서 뿌려지는 씨앗,

햇살 아래 슬쩍 몸을 뒤척이다가

흙 속으로 묻혀간다.

흙속에 묻혀

비로소 한 생이 길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강물과 둔치의 경계는 허물어져 있다.

물빛과 흙빛의 경계도 어느새 허공처럼 흐려져 있다.

유골을 뿌리는 여인과 농부가

봄날의 햇살 속에서 아른거리더니

기어이 한 무더기 아지랑이로 피어오른다.

 

뼛가루가 뿌려져 씨앗이 되고

씨앗이 뿌려져 뼛가루가 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가루로 뿌려져 하나의 뿌리로 묻히는 것을

먼 풍경으로 바라보는 봄날이다.

 

 


 

홍종빈 시인

1944년 경북 왜관 출생. 2009년 <문학저녈> 신인상으로 등단. 전 국제라이온스협회 왜관클럽 회장, 전 왜관체육회 회장, 전국흑염소전업농협회 부회장. 저서,『특수가축』, 『흑염소 사양관리 기술』, 『흑염소 기술교육』 등. 시집, 『2인 3각』, 『가시』, 『젓가락 끝에 피는 꽃』 『꿈의 비단길』 출간. 시집『젓가락 끝에 피는 꽃』이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우수도서로 선정됨. 한솔목장 대표, 홍종빈아카데미 대표. 21C생활문인협회 회원. 구상문학관 <시나루> 동인. 칠곡문인협회 이사. 경북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