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옥 시인 / 나리
꽃을 안고 자는 여자 꽃을 그리는 여자 꽃을 쓰는 여자... 꽃을 꽂는 여자 꽃을 꺾는 여자,
나리꽃을 머리에 이고 가는 두 여인 새를 머리에 이고 가 는 두 여인 염소를 끌고 가는 두 여인,
여자들과 여인들이 아이를 업고 강을 건너는 사이사이 나리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꽃잎을 따는 남자,
밀구에 난 털을 밀고 꽃 밖으로 나온 암술을 비비며 벌떼 들이 산의 허리를 넘어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붉은 빛으로 물든 산천을 노을이 잡고 있는 오류를 나리꽃이라고 쓴다
이은옥 시인 / 앵두
카스피해 인근 발칸반도 대지를 수놓았던 당신, 화물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이곳 캐슬 1602호에 도착한 당신, 지루한 여행을 끝내고 모자를 벗고 옷을 벗고 내장을 비우고 뼈를 꺼내는 당신, 붉은 즙을 짜내고 분열하는 당신, 태양의 향기에 침묵했던 당신, 앵무새가 유혹했던 당신, 몸속 깊숙이 스며든 당신의 오만한 단맛과 신맛, 광활한 산맥의 바람 소리를 칼질하는 삶, 오늘도 수많은 동료들과 몸을 섞고 수학 공식처럼 저울 위에서 땀 흘리는 당신, 어두운 병 속의 자유를 열고 향락에 빠져든 당신, 연인들과 첫 키스를 즐기며 고혹적인 알몸을 노출하는 당신,
―신작시집 ‘나에게는 천 개의 서랍이 있다’(실천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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