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 시인 / 숲
숲을 보았는가? 천년의 원시림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그 웅장한 거목들의 몸짓을 보았는가? 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면 서울 근교 광릉의 아름드리 잣나무밭쯤에 가 보아도 좋네.
그 나무들 곁에 가 고개를 들면 우리가 시정에서 서로 키를 겨루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노릇인가를 보게 되지.
그 나무들 곁에 가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주고받는 일상의 말들이 얼마나 시끄럽고 쓸모 없는 소리인가를 듣게 되지.
아니, 그 나무들 곁에 가 서게 되면 우리가 그 동안 걸었던 먼 길이 얼마나 고달프고 덧없는 짓이었던가를 알게 되지.
저 건장한 어깨와 어깨들을 서로 나란히 엮어 자라는 저 순금의 단란 그들이 지닌 유일한 언어…… 저 긍정의 푸른 모음들 그리고 그들의 싹을 틔운 어머니 대지를 한 치도 배반하지 않는 저 충직과 인내.
숲을 보았는가? 몇 백년 묵은 아름드리 거목들이 서 있는 그런 숲에 가 보게 그 숲에 가서 한 둬 시간 머물다 보면 우리는 한 십년쯤 더 자라서 빈 가슴으로 돌아오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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