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록 시인 / 어둠 속의 댄서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뭔가 우당탕 부딪치는 소리, 울음 소리, 소리 지르는 여자, 날카로문 뭔가 찢어지는
소리, 밖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빠르게 중얼거리는 소리, 급박하게 달려가는 발 소리, 누군가 절박하게 부르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음악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질서와 규칙, 얼어붙어 가는 불, 음악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춤
출 수 있을 테니까... 밖에서 아니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나는 소리를 더듬는다. 날카롭게 곤두선 숨 소리와 심장고동 소리가 섞여, 밖의 소리들과 섞여
음악이 된다. 음악이 되어야 한다. 밖은 어둡고 도망갈 곳이 없기에
황강록 시인 / 술 취한 아버지에게서는
술 취한 아버지에게서는 좌절한 수컷의 냄새가 난다
꿈이 심란해지는 시절이 오면 아들들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아버진 왕이 되고 싶었거나 하늘을 날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을 뒤바꾸는 혁명을 이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무엇을 꿈꾸었든 꿈꾸지 아니하였든 그는 우울한 술 냄새를 풍기며 집 안으로 들어오는 내 아버지이자 어머니의 남편 집 안은 그의 옷자락에 묻어온 어둠으로 더러워진다 아무리 불을 밝혀도 어둠은 그의 공허한 노랫소리와 뒤섞여 구석에 웅크린 채 지워지지 않는다
모든 수컷들은 꿈을 팔아 돈을 벌어오는 걸까 깔릴 듯한 꿈의 무게에 비해 손에 받아든 돈이 너무 가벼워서 술을 마시는 걸까
수천억의 물고기 비슷한 것들이 내가 되어 태어날 꿈을 꾸었고 수천억의 물고기 비슷한 것들이 좌절하였으니 내가 되어 태어날 이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으나 난 여기 있다. 누군가 수천억의 가능성을 뚫고 내가 되어, 아버지가 되어
'그것 봐! 할 수 있잖아! 아직 포기하지 마 넌 한 적이 있어!"
귀찮게 귀찮게 꿈속에서만 소리를 지른다. 깨고 나면 기억은 흔적도 없고 귀찮게 귀찮게 술 먹었을 때만 중얼거린다. 한 소리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깨고 나면 기억은 흔적도 없고... 자기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고... 하긴 정자가 왜 내가 되고 싶어 했는지 기억할 리가 있겠나...
술 취한 아버지에게선 언제나 좌절한 수컷의 냄새가 나곤 했다. 아들들은 그 냄새를 싫어했으나, 그로 인해 아버지를 사랑하거나 미워하였고, 어느 날
실컷 떠들고 웃고, 마침내 울고 난 술자리의 끝에서 아득하게 멀어지는 의식 속에 그 냄새를 맡는다. 여자들이 흐릿한 시야 밖에서 웃으며 떠나가는 동안...
나 역시 왕이 되고 싶었거나 하늘을 날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집 『벤야민 스쿨』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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