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신진향 시인 / 섬에 살진 않아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3.

신진향 시인 / 섬에 살진 않아도

 

 

섬에는 안 가봤지만 바람은 알아요

속에 담긴 소금기는 바다로부터 와서

혀를 내밀고 하루 종일 다니면

입안에서 짭짤한 맛이 흩어져요

언젠가 당신이 핥아본 때가 있었죠

당신의 맛이 퍼지니까 당신도 섬이겠다 싶었어요

외로움을 잊고 싶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요

날꽃이 빼곡해서 꽃무덤이에요

저마다의 빈틈에서 짭짤한 냄새가 나요

머리카락마저 엉긴 넝쿨 비비는 살은 패이기 좋아요

섬의 내연에서는 파도가 잔잔해지는데

파도는 쉬고 싶은 거라고 믿었어요

외연에서 그렇게 거칠게 파고들 거란 건 생각을 못했어요

경험해 보지 않는 것들은 흐를 뿐이란 걸

타인이 알려준 말은 순화된 욕이란 걸 늦게 알았어요

내게도 짠맛이 나요

섬에는 안 가 봤지만,

섬인 듯 바람인 듯 내가 흩어져요

 

 


 

 

신진향 시인 / 사막도 고랑(高浪)으로 별을 키운다

 

 

밭을 고르며 흙을 퍼 올린다

이랑의 무릎에 앉은 살집, 두둑할수록

패이고야 만다

주름으로 뿌리를 잡아세운다

단단해지는 시간을 견뎌서 움을 출가시키고

울컥 내려앉는다

 

저절로 불어나 치대는 언덕

쓸어내리자 모래알 같은

날이 버석거린다

몇 개의 구덩이와 모종을 솎아내었던 때

발 디딜 돌멩이 하나 없던 비탈이 새긴

바람의 물결무늬

 

표정만으로 속을 가늠할 수 없는

버석한 얼굴에 서린 주름을

관록이라던지 가면이라 한다고 해도

강물이라고 바다라고

혼자라도 다독이며 불러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슬픔으로 서로를

위로하겠니

 

찡그린 얼굴로 밭은 숨을 뿌려대는 언덕 너머

별이 내려서 잠결에 언뜻 쉬었다 가고

 

네 안에 내가, 내 속을 네가 비집고 자란 날들

찰나로 밭이 되고 바다도 되는

새벽이슬에

별들이 물장구를 칠지도 모를 일인데

 

 


 

신진향 시인

2019년 월간 《모던포엠》185회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경희 사이버 문예창작과. 모던포엠 작가회 회원. 〈시 나무〉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