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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채종국 시인 / 시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3.

채종국 시인 / 시선

 

 

수족관에 우럭 한 마리 헤엄을 친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는 듯

넙치에 등을 기대어 생각의 끝을 흔들고 있다

 

곧 있을지 모를 피가 튀는 공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다섯 살 꼬마 같은 눈망울을 지느러미 삼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흐릿한 물속을 한시도

바로 보지 못하고 이마를 찡그린다

사시斜視 같은 시선으로

살아온 시간을 거꾸로 오른다

물고기로 살았을 저만의 긴 시간이 눈동자에 묻어 있다

 

어쩌면 가끔 내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내 회한의 시간과 지금 녀석의 시간이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헤친 물결 속

유리 같은 침묵

기울어 가는 시간만큼

잘려 나가는 속살

 

내가 같잖은 철학에 이를 때

녀석은 죽음에 닿는 시간

 

서로 다른 시선이 순간,

같은 곳에 머문다

 

무크『사람의 깊이』 2022년 재25호 발표

 

 


 

 

채종국 시인 / 비누의 자세

 

 

날마다 살을 발라내고 날마다 뼈를 추스른다

발라낸 육신을 빌려 두 손 모아 향기롭게 빌어보지만

오늘의 자비는 내일로 미끄러진다

 

표정을 읽을 수 없어 고통을 헤아릴 순 없지만

점점 더 둥글어지는 것은

네모난 생을 쉬이 건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진 육신,

그 모서리를 둥글게 하는 힘은

타인의 손길이 아니라

자신의 부드러움이었다는 것을

닳아져 가는 입술에 거품을 물며

욕탕 바닥에서 숨죽여 울 때 알았다

 

기름때 묻은 내 삶의 허물을 향기로 닦지만

움켜쥔 것들을 놓기에는 손아귀 속 욕망의 악력이 세다

 

스스로 허물어져 가는 둥근 자세

부드러운 저 소멸은 뼈와 살을 구분할 수 없다

 

계간『미래시학』 2022년 겨울호 발표

 

 


 

채종국 시인

1970년 광주에서 출생. 2019년《시와 경계》를 통해 등단. 2016년 신라문학대상 수상(시조).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전남지역작가 회원, 대중서사연대 회원,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