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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이삭 시인 / 국경에 서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4.

안이삭 시인 / 국경에 서다

 

 

우국(兩國)에 다녀왔다

어깨에 툭! 입국허가 스탬프가 찍히고 나서야

내가 국경을 넘어섰음을 알았다

우국의 국경에는 이정표가 없다

 

우국에는 우국의 언어가 있다

내가 아는 모든 말은 외래어로 취급받거나

특별한 패턴의 장식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젖는 온도와 속도에 따라

높낮이가 결정된 말은 조용히 흘러가다가

상대에게로 증발하거나 스며든다

 

가끔씩 알아듣지 못해 허둥대는 외국인들도 있지만

나는 금방 눈치 챘다

우국의 언어는 조용히 천천히 물들어 온다는 것

 

꼭 강조하고 싶은 말은

흘러가지 않고 그 자리에 고여 있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 얼굴을 담가 동조를 표시할 때마다

기쁨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우국은 어떤 사람의 입국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국경에서 머뭇거리다가

난감한 얼굴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

 

아무도 내가 우국에 다녀온 줄 모른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방금 우국에서 돌아왔다 하더라도 나는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서로의 행방을 묻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내게 가까이 다가서도

물소리가 저희들끼리 화음을 맞춰 부르는 노랫소리를

우리는 끝내 듣지 못한다

 

당신의 얼굴이 왜 이렇게 낯익은지

골똘히 들여다보기야 하겠지만

 

 


 

 

안이삭 시인 / 통성명

 

 

너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야겠다

징검다리 건너다가

물억새 그늘 흔드는 작은 소요

반갑다, 피라미!

 

이쯤에서 가만히 서있으마!

새끼손가락만 한 몸 구석구석 새겨진 팽팽한 경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고

어미의 어미 또 그 어미의 어미가 가르쳤구나

 

이 넓은 우주

홀씨 하얗게 날리는 봄날

한 물고기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오후

 

나지막이

내 이름을 일러주었다

 

 


 

안이삭 시인

대구에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1 《애지》 여름호에 <초록방울제사장>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한 물고기가 한 사람을 바라보는 오후』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