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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소진 시인 / 정동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5.

박소진 시인 / 정동길

 

 

첫서리가 사라졌다

눈빛마다 붉은 거품을 토하고

그녀의 발자국을 마주보고 굴렀다

내 발자국도 따라 울었다

초록 돌멩이끼리 짓이겨 껴안고

그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새끼손가락 하나 들어갈 것 같은

세모난 고리 같다

거기에 내 심장을 껴 맞춰본다

 

걷는 외로움에

길 틈틈이 핏빛 그리움을 묻어 놨는데

가을이구나,

그녀의 낙엽이 하강하고

문득 끼워 넣은 심장이

잘 있나 궁금해져

다시 담들의 돌멩이로 갔다

퉁퉁 불어터진 고깃덩어리가

입이 달려

정신없이 뜀박질한다

 

어느새

차가운 낙엽 위로 하얀 발자국

 

 


 

 

박소진 시인 / 바람을 부르는 소리

 

 

허공의 승무가 시작된다

바람결이 그네를 띄우면

구경 온 여인네 치마폭에

아들을 잃은 어미의 노래가 스민다

현을 뜯고 울음을 토하라

 

사냥하라

노루의 잘려진 발톱은

새총에 맞아서다

그녀의 쓸개를 피처럼 마시고

 

숲의 정령을 부르는 소리

붉은 영산홍을 몇 개 즈려

입술에 묻혀라

올빼미 부리처럼 날카롭게 뜯어라

 

뱀은 가라

제 등지로 돌아가 똬리를 틀어라

네 놈의 성기 끝에서

땀을 마시고

생명을 내뿜고

 

 


 

 

박소진 시인 / 성북동 불빛

 

 

빛에 고개를 젖혔다

자정도 되기 전인데

달이 태양처럼 붉다

노란 눈물 뿜고

투미한 내 머리 위로 하산한다

 

죄 많아 오늘 같은 부름에

밤이 고개를 숙여 오면

별도 떨군 제 빛

처절한 달 노래

 

창을 두고 너를 본다

제집 밝히는 가로등 여러 개

그중 붉은 옥빛 뿜으며

달빛에 눈이 선하다

언덕 넘어와

이마 비추고

 

푸른 달 시린 노래

머리 위 눈물샘 이고

간다

빛 따라 가야 할 길에

먼 눈

보이지 않는 길

 

여기

한밤 진흙 발 허공에 딛고

초조한 숨소리

서글피 아껴두고

갈 곳 어딘가

 

오래된 달빛이 포근히 언덕을 메웠다

보랏빛 수국 이파리

파르르 제 몸 떨고

한 잎 떨며

찬란히 펼쳐지는 하얀 밤길

 

 


 

박소진 시인

1983년 서울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同 대학원. 2015년 《포엠포엠》에 <키노아이> 외 4편으로 등단. 시집 『사이, 시선의 간극』(2014) 세종도서 선정. 한양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전공. 교육 나눔터 뚜에듀(toutedu.com)를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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