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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송이 시인 / 압록 매운탕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7.

조송이 시인 / 압록 매운탕

 

 

여름이 산 채로 매달려

산발한 내장을 겨울바람에 맡기고 있다

떠나지 못해 소용돌이치다가 맞닥뜨리는 그곳

 

압록, 매운탕집 처마 밑에서 펄떡이는 무청 이파리들은

칼바람에 낯빛 싹둑싹둑 잘리어 말라비틀어져 가고

사람들도 통나무집 속에서 야위어

바람의 실타래에 친친 감기며 힐끔거린다

 

머리 거꾸로 처박고 강의 상류를 휘젓는 바람은

너럭바위에 퍼질러 앉아 오장육부 헹구며 방망이질하다가

푸른 바늘침 꼿꼿이 세워

어중간히 물기 품은 무청의 살을 콕콕 찌른다

겨우내 뒤집혀진 마음까지 마름질하여

찬 허공에 대고 마저 재봉을 하고

드륵드르륵 틀질까지 해댄다

바늘땀이 촘촘히 박혀 허공에 붙어사는 무청 시래기들

 

매운바람이

비린내를 먹으며 끓고 있는 무쇠 솥단지 옆

여름이 땀 뻘뻘 흘리며

겨울의 속살 콕콕 집어 발라내고 있다

 

 


 

 

조송이 시인 / 홍시들

 

 

나무에 서리 내리고 감색이 제 속으로 들어가 다시 익는다

새파란 하늘을 뒤집어 쓴 천지 사방이

실한 햇살만 모아 속살 가득 채운다

바람이 오만 가지 속내를 드러내며 잔가지 쳐내다가

애지중지 꼭지를 따, 화들짝 놀란

입동 속으로 툭 떨어뜨려 줄 때

나는 손바닥을 땅바닥처럼 넓혀

고요히 받아 안아 식탁 위에 나란히 앉힌다

 

가을 바닥으로 떨어진 대봉 몇 알로 밖은 소란스러운데

공손한 손은 집 안으로 들어온 늦가을을 닦느라

세상이 다 가지런하다

고만고만한 것들이 어깨 겨루고 앉아 서로 곁눈질이다

손끝에 봉긋 솟아오른 온기가 돌아 유난히 번들거리고

온몸 출렁거려 보아도

가을 햇살만으로는 제 뻑뻑한 떫음을 다 우려내기에 아직 이르다

 

죽을힘을 다해 팔방으로 뛰어다니며

팥죽 끓듯 명랑하다

가지 채 끊어온 바람의 피가 돌아 종횡무진이다

 

손가락으로 콕 쑤시면

손이 온몸이 무한정 들어갈 것 같은 말랑말랑한 가을 하늘이다

 

 


 

 

조송이 시인 / 머플러

 

 

뜨개질하는 꽃을 처음 본 건 오늘이다

그 꽃이

고양이를 몰고 나가는 걸 본 것도

 

분홍은 어렵다

꽃이 눈뜨지 못하게

털실뭉치에 끼어들어 힐끗거린다

 

꽃을 곁에 두고

고양이는

눈 밝은 색으로 진입 중

좌우 건반을 훑듯 앞발이 격렬하다

 

눈꺼풀 속에서

다섯 손가락 지문이 닳는다

꽃이 든 대바늘에 콕콕 찔리며

보이지 않아 찬란한

꽃의 페이지를 함부로 헝클며 한 코 한 코 겨우 넘긴다

 

고양이를 읽어 내는 꽃의 자세가

꼰 다리 풀어

허공을 수습할 때

 

고양이 발목에

분홍을 두른다

 

소리 없이 감은 눈 열고

 

웃는다

명랑한 꽃을 마감한다

 

 


 

조송이 시인

1959년 광주에서 출생. 전남대학교 간호대학 간호학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2013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 시집 『토끼풀 여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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