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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언주 시인 / 엘리베이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7.

심언주 시인 / 엘리베이터

 

 

어두운 하늘 위로 위로 올라간다. 나는 지금 천국에 간다.

어릴 때 동네 할머니들은 꽃상여를 타고 갔는데 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 하늘이 가까운 아파트 17층.

이곳에선 아기별 꽃이 한 철도 못 넘긴 채 기진해 죽지만, 버튼 하나로 푹 꺼진 빵을 부풀릴 수 있다. 리모컨으로 당신과 내 날카로운 발톱 사이를 빠져나간 태풍의 흔적도 눈치 챌 수 있다.

 

가끔 하늘에 달을 쏘아 올린다.

몸뚱이 한쪽이 베여 걸리는 달.

누군가의 영혼을 싣고 비행기가 더 깊은 하늘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버튼을 그곳까지 눌러 보지만, 엘리베이터는 미루나무보다 조금 높은 곳, 17층까지만 나를 올려다 놓는다.

 

시간의 컨베이어가 돌고 있다.

포장을 끝낸 과자 봉지처럼 어느 지점에서 나는 그렇게 툭 떨어질 것이다.

 

 


 

 

심언주 시인 / 4월아, 미안하다

 

 

4월아, 미안하다.

진달래꽃들에게 더 미안하다.

펜을 들고 더 미안하다.

3월을 지나온 바람아, 잘 가.

 

K 시인에게 부칠 편지 끄트머리에

3월이라고 썼다가

'3' 자와 '월' 자 사이에

+1을 끼워 넣는다.

 

3+1

3은 귀만 같은데 1은 무심히

귀를 베는 면도날

사과 엉덩이를 베는 시큼한 칼날

개미허리 위 구둣발

아래 봄은 피는데

브래지어 곁 넥타이

사이 꽃은 피는데

 

쉬잇, 쉿

말을 쪼개고

구름을 가르고

입술 앞 검지가

너를 겨누고 있는 중이다.

미안하다.

남산 끝

4월 하늘아,

 

 


 

심언주 시인

1962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2004년 《현대시학》에 〈예감〉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4월아, 미안하다』 (민음사, 2007), 『비는 염소를 몰고 올 수 있을까』(2015), 가 있음. 현재 '시류'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