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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준호 시인 / 인형 뽑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9.

손준호 시인 / 인형 뽑기

 

 

아빠는 뽑기의 달인

사닥다리 타고 하늘벽 올라가는 타워크레인 기사

공중으로 무전이 날아오면 뭐든지 뽑아 올리지

철근을 뽑고 목재를 뽑고 밑턱구름도 건져 올리지

 

아빠를 빼닮은 나는 인형 뽑기 선수

골목 끝 빈 상가 인형뽑기방 생겼다고

불황인가 봐, 물티슈 쏙쏙 뽑으며 혀를 차는 엄마

 

그날부터 나는 꿈을 꾸지, 찰랑거리는 호주머니

오백 원 동전 넣고 은빛 집게 팔을 조종하지

칼날 같은 경계 속으로 형광등 불빛이 발목을 꺾지

눈알 반들반들한 인형의 털실이 촉각을 곤두세우지

 

우린 먼 우주의 꼭두각시일지 몰라, 어쩌면

유리에 갇힌 저 인형들처럼 말야,

나는 동전을 다시 넣으며 중얼거리지

 

인형의 영혼을 번역하는 직업이면 좋겠어

새들의 음을 베껴 악보에 옮겨 놓듯 말야

바람의 귀에 대고 유령처럼 속삭일거야

 

예고 없이 창밖으로 싸락눈 칠 때

셔터에 얼어붙은 주홍 글씨

점·포·임·대·

 

그때 발길 돌리며 보았지

분리수거함에 버려진 곰 인형

있잖아, 우리집에 같이 살면 안 될까?

 

 


 

 

손준호 시인 / 낙타 끌고 출근하기

 

 

눈뜨자마자 카톡, 나를 호출합니다. 없는 목줄에 끌려다니는 반려, 반려할 수 없는 우리는 와이파이 곁으로 바싹 당겨 앉아요. 굼뜬 낙타를 보채며 나는 5G로 뉴스를 구독해요. 메시지를 정리해요. 밤새 생긴 1자 주름을 지워야 불안하지 않아요.

 

지하철을 타요. 덜 깬 잠들이 우글우글해요. 나는 레일처럼 노래를 이어폰에 운반해요. 우리는 반복적으로 이동됩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 엘리베이터, 굿모닝― 벨을 울리고 음音을 퍼 날라요. 나는 검색하고 낙타는 공유됩니다. 꿀꺽, 스팸을 삼켜요. 반질반질한 생활에 땀내가 나요. 시간이 방전되면 아웃! 급, 충전합니다.

 

우리는 오래된 우주의 일회용 부품일까요?

사용되고 낡고 버려지는,

 

삶이란 쓸쓸하고 메마른 사막. 콧구멍 닫고 하루하루 모래바람을 견디는 일. 해가 차가워져 귀가를 서둘러요. 왜 저녁이면 다 푸근해지는 걸까? 샤워기 틀면 오아시스 같은 마음, 신기루는 어떤 맛일까?

 

낙타는 내 안의 티브이를 열고 아프리카로 들어가요. 별풍선이 쏟아져요. 월세 든 방들이 밤새 소란스러워져요. 나는 날마다 진화하고 낙타는 날들을 반추해요.

 

 


 

손준호 시인

1971년 경북 영천에서 출생. 계명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2020년 노계문학백일장 우수상(시조) 수상. 2021년 계간 《시산맥》 신인 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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