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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성순 시인 / 내성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4.

조성순 시인 / 내성천

 

 

여름에도

눈이

내렸다.

 

그믐이면

은핫물이 기울어

 

그런 밤이면

사람들은

무명 홑이불을 들고

모래 갱변으로 나가서

물을 맞았다.

 

아무개 집 딸 혼사가 다가오는데

누구는 감주를 빚고, 누구는 배추전을 부치고

물 건너 뉘 집 아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여

온 세상이 마스크 감옥 벗어나게 되었다고

개성공단이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며

금강산 만물상을 다녀온 텃골 김 씨는 이젠 죽어도 원이 없다고

 

홑이불엔 은핫물이 넘실거리고

모래사장엔 사람살이 이야기가 달맞이꽃으로 피었다.

 

물길 막은 영주댐

허물고

길을 여니

자갈로 굳었던 땅에

검푸른 수초들 사라지고

모래가 다시 흘러

 

왕버들 늘비한 물 섶에는

버들치 모래무지 은어 떼 소곤거리고

장어가 먼바다 이야기를 데리고 오셨다.

 

뚝방 위

금줄 두른 둥구나무

사람들 소망을 품었다가

물고기도

새도

잠든 깊은 밤

은핫물에 띄워 올리고

 

그곳에는

여름에도

눈이

내린다.

 

한낮 땡볕에도 녹지 않고

모래밭에서 하얗게 빛난다.

 

 


 

 

조성순 시인 / 산월수제비

 

 

생활에 해는 뜨지 않고 비만 내려 답답할 제면

산월네 수제비 뜨러 간다.

주인 아낙 재빠른 손끝 따라

설설 끓는 물결 위에 누런 달이 뜬다.

창 밖에 비는 내리고 생활은 풀리지 않는데

손깍지 베개하고 궁싯거리고 있는 것은

종점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중심에서 벗어나 외곽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지러진 조각달이라도 한 입 베물고

국수 꼬리라도 후루룩

삼키면서

절망아 물럿거라 희망아 길 열어라

배 두드리며 내일을 기약하자.

비는 올지라도 생활은 가물고

몸이 사시나무로 떨리는 날

생활에 습한 기운을 덜고

갠 날을 준비하는 데는

산월네 수제비 칼국수 한 그릇

눈물 콧물 섞어 먹다 보면

어느새 하늘엔 빗방울도 성글어지고

내게는 반짝이는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조성순 시인

경북 예천에서 출생. 2004년 《녹색평론》에 〈애기복수초〉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문학나무 신인상 수상, 교단문예상 운문부문 당선, 시집으로 『목침』,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나는 걸었다』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