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순 시인 / 내성천
여름에도 눈이 내렸다.
그믐이면 은핫물이 기울어
그런 밤이면 사람들은 무명 홑이불을 들고 모래 갱변으로 나가서 물을 맞았다.
아무개 집 딸 혼사가 다가오는데 누구는 감주를 빚고, 누구는 배추전을 부치고 물 건너 뉘 집 아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여 온 세상이 마스크 감옥 벗어나게 되었다고 개성공단이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며 금강산 만물상을 다녀온 텃골 김 씨는 이젠 죽어도 원이 없다고
홑이불엔 은핫물이 넘실거리고 모래사장엔 사람살이 이야기가 달맞이꽃으로 피었다.
물길 막은 영주댐 허물고 길을 여니 자갈로 굳었던 땅에 검푸른 수초들 사라지고 모래가 다시 흘러
왕버들 늘비한 물 섶에는 버들치 모래무지 은어 떼 소곤거리고 장어가 먼바다 이야기를 데리고 오셨다.
뚝방 위 금줄 두른 둥구나무 사람들 소망을 품었다가 물고기도 새도 잠든 깊은 밤 은핫물에 띄워 올리고
그곳에는 여름에도 눈이 내린다.
한낮 땡볕에도 녹지 않고 모래밭에서 하얗게 빛난다.
조성순 시인 / 산월수제비
생활에 해는 뜨지 않고 비만 내려 답답할 제면 산월네 수제비 뜨러 간다. 주인 아낙 재빠른 손끝 따라 설설 끓는 물결 위에 누런 달이 뜬다. 창 밖에 비는 내리고 생활은 풀리지 않는데 손깍지 베개하고 궁싯거리고 있는 것은 종점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중심에서 벗어나 외곽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지러진 조각달이라도 한 입 베물고 국수 꼬리라도 후루룩 삼키면서 절망아 물럿거라 희망아 길 열어라 배 두드리며 내일을 기약하자. 비는 올지라도 생활은 가물고 몸이 사시나무로 떨리는 날 생활에 습한 기운을 덜고 갠 날을 준비하는 데는 산월네 수제비 칼국수 한 그릇 눈물 콧물 섞어 먹다 보면 어느새 하늘엔 빗방울도 성글어지고 내게는 반짝이는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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