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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재리 시인 / 영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1.

정재리 시인 /

 

 

혼자가 있었다 혼자가 여럿 있었다 한 바퀴 여러 바퀴 빙빙 도는

세마젠*은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앞섶을 꼭꼭 여미었다 짙은 눈을 내리깔고 펼쳐지는 반달 같은 흰 스커트 자락보다

검정 구두 흰 속바지에 눈길이 가고 그 속까상상해 보는 나는

혼동되기 쉬웠다

아무 날짜 아무 피리 소리 아무 뜻 아무 이별 아무 인샬라

점점 빨라지는 속도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돌아도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오른손을 올리고

 

흑해는 멀고 아름다워 손가락으로 짚어 보며

타오르는 이스탄불의 밤

 

관객들은 라크 술잔을 들고 하나같이 치~

모르는 사람과도 건배하는 지하 동굴 카페는 입구와 출구가 다른 구조

 

출구로 사라진 사람이 입구로 돌아오다 길을 잃고

회전은 완성되지 않는다

 

꽃잎과 기억과 멀리 물고기 냄새와 품속과 다시 혼자

 

이 되려는 그였다 무게를 날려 버리고 새털처럼

0이 되어 가는 그였다

 

사람들은 세마춤이라 하고 이슬람을 연구하는 교수는 춤이 아니라 신을 향한 의식이라고 단단히 고쳐 말했다

 

*이슬람 신비주의 종단의 수행방법인 회전춤을 추는 사람

 

-계간 문예바다(2021년 겨울호-공모 시)

 

 


 

 

정재리 시인 / COSMOS 일기

 

 

1.

빛이라는 글자에서 빛이 나 머리에 별을 단 사람이 나타난 듯 바라보았어요

새벽 네 시의 창문 앞에서 조금 밝음과 조금 어둠의 차이에 대헤 논하지 말아요

빛과 별은 한통속

연락할 께, 하고 사라져버린 먼 과거에서 출발합니다

1초에 지구 일곱 바퀴 반을 달려온 빛은 별을 대신하여 창백해 지고

우리는 공갈로테 초원에 두 팔과 다리 입과 눈을 최대한 벌리고 누워

붉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사라지는 혜성을 바라보면서

소원이 없었죠

등뼈가 시려오는 은하수 너머 몇 만 광년 밖의 별을 헤아리는 일은

하루를 영원으로 알고 종일 날갯짓하는 나비의 적막처럼

기록 없는 기억

잃어버린 야크를 찾아 떠난 친구 바투는 아직 소식이 없고

은하계의 소문은 날마다 진화하여

마침내 뚜렷한 별자리가 드러납니다

잿빛 푸른늑대자리

 

2.

얼마나 멀리 가면 그 별이 작게 보일까요

얼마나 오래 지나야 연락이 올까요

날이 밝으면 다시 사막

유목민은 누군가 만나면 이렇게 인사하죠 "무슨 소식 없어?"

 

계간 시산맥(2018년 여름호)

 

 


 

정재리 시인

1999년 한국문인협회 수원 지부 시 부문 신인상. 2017서정시학신인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