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옥 시인 / 시인은 안다 시 한 편을 위해 몇 날 몇 밤을 허비하고도 끙끙 앓으며 피 말리는 이유 시를 써본 사람은 안다. 다 썼다 하고 보면 부족하고 고쳐 쓰고 나면 모자라는 이 환장할 작업 잘 못 박힌 낱말 빼내고 적당한 단어 갈아 끼고 보면 앞뒤 아귀가 뒤틀리는 이 속 터지는 노역 필요 없는 줄 뜯어내고 기막힌 표현 끼워 넣고 보면 주제가 뭉개지고 마는 이 끓는 울화 완성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한 줄 때문에 애간장이 타는 울분 시를 써본 사람은 안다 이길옥 시인 / 돋보기 밖 요즘 들어 부쩍 눈이 침침하다 성애가 시린 듯 안개가 낀 듯 흐릿하고 희미하다 윤곽이 잡히지 않고 형체가 흔들린다 자꾸 눈을 비비고 물체에 가까이 다가가도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며 겹쳐 아른거린다 이런 내 시력을 눈치챈 돋보기가 호기심으로 나를 유혹한다 잠깐 빌려본 저 너머 세상 또렷하다 성애가 씻겨 내리고 안개도 걷히고 대명천지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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