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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정옥 시인 / 누구나 한창때가 오듯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3.

안정옥 시인 / 누구나 한창때가 오듯

 

 

지난해에는 대벌레들이 불빛을 이어지듯

그 지난해에는 매미나방이 계단을 훑듯

봄부터 제비들이 추녀 끝에서 펄럭이듯

나는 제비들이 제비 아니게 할 수 없듯

그걸 바라보는 인간은 모르는 것이 많듯

책에서 배운 것은 이미 멈추게 되어 있듯

박물관은 쿨쿨, 극장은 그저 의자이듯

마음은 저마다 각각, 일일이 맞추기 힘들듯

그가 말하지 않기에, 꽃들이 심증을 펴지 않듯

세상은 그저 대부분 눈치로 살펴 줘야 하듯

사전에서조차 남의 마음을 미루어 알아내는

힘이라 하니 그러면 나는 그런 힘도 없는 듯

그저 추측하건대 누구나 한창때는 공평하듯

비가 없는 장마 막간에, 사람들의 꿈같은 짓,

그런 한때나 바라봐야 하는 내가 슬퍼지듯

이 슬픔을 누구에게 나눠 주지도 못하면서

그저 꼼짝없이, 제비의 한창때가 와 있는 것을

당신이 가야 할 때를 바라봐 줘야 하듯

내 삶은 아프다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 묻고 싶듯

 

- 시집 <다시 돌아나올 때의 참담함) (지혜, 2022)

 

 


 

 

안정옥 시인 / 밑단을 말하면

 

 

변두리 허름한 양옥집들을 기억하는가

그 양옥집의 붉은 기와지붕 밑단을 이어주는 함석은

세상 빗방울들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걸

붙잡아두려는 것이다

교복 안에 가두어야 했던 날도 있었다

장난칠 때마다 치마의 밑단이 뜯어졌다

꿰매는 횟수가 줄어들 때마다 한 뼘씩 컸다

우리가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걸

붙잡아두려는 것이다

 

 


 

안정옥 시인

서울에서 출생. 1990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1993)나는 독을 가졌네(1995), 웃는 산(1999), 아마도(2009)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