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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세영 시인 / 유학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4.

오세영 시인 / 유학

 

 

내 귀국하면 여기서 배운 지식으로

높은 관직을 탐하지 않으리.

내 귀국하면 여기서 얻은 기술로

큰 돈을 벌지 않으리.

한적한 길가 사이프러스 시원한 그늘 아래

조그마한 빵 가게를 하나 차리고

셰프가 되리.

여기서 구한 사랑과 연민과 용서를 저승으로 가져가

빵으로 구워서 슬프고도 가난한 내 이웃과 함께 같이

나눠 먹으며 살리.

내 죽어서 조국으로 돌아가면 결코

여기서 배운 지식으로 권력을, 명예를 탐하지 않고

일개 셰프가 되리.

사랑과 연민과 용서를 눈물로 반죽한

그 소박한 한덩이의 빵,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아침마다 나눠 먹으며 살리.

머지 않은 날, 이 유학생활이 끝나

내 조국에 돌아가면 ....

 

 


 

 

오세영 시인 / 바람의 시

 

 

 머나먼 서역西域, 한겨울의 고비고에서는 산후 우울증에 걸린 어미 낙 타가 갓 낳은 제 새끼의 수유授乳를 거부하며 홀로 칩거는 일이 종종 있 다고 한다. 척박한 환경, 궂은 기후 때문이다. 그럴 적에 유목민은 마두 금馬頭琴 하나를 그의 목에 걸어주는데 바람이 연주하는 그 악기 소리에 점차 마음이 누그러진 어미 낙타는 처음엔 그렁그렁 눈동자를 적시다가 종내는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제 새끼 찾아 품에 안고 따뜻이 젖 물린다. 들었다.

 

 아아, 잘 못 살아온 한 생이었구나.

 새집을 지으면서 나도 처마에

 풍경風磬 하나를 매달아 놓았다.

 

 바람이 쓰는 시.

 

*유목민들은 이를 후스(Hoos) 요법이라고 한다.

 


 

오세영 시인

1942년 전남 영광(靈光)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8대학 대학원 석사학위및 문학박사학위. 1968현대문학등단. 충남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서울대학교에서 현대문학(현대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한국현대문학을 강의. 시집으로 시간의 뗏목』 『봄은 전쟁처럼』 『문열어라 하늘아』 『바람의 그림자. 한국시학회장, 한국시인협회장 등을 역임. 녹원문학상 평론부문소월시문학상정지용문학상공초문학상, 만해상 문학부문 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