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시인 / 유학 내 귀국하면 여기서 배운 지식으로 높은 관직을 탐하지 않으리. 내 귀국하면 여기서 얻은 기술로 큰 돈을 벌지 않으리. 한적한 길가 사이프러스 시원한 그늘 아래 조그마한 빵 가게를 하나 차리고 셰프가 되리. 여기서 구한 사랑과 연민과 용서를 저승으로 가져가 빵으로 구워서 슬프고도 가난한 내 이웃과 함께 같이 나눠 먹으며 살리. 내 죽어서 조국으로 돌아가면 결코 여기서 배운 지식으로 권력을, 명예를 탐하지 않고 일개 셰프가 되리. 사랑과 연민과 용서를 눈물로 반죽한 그 소박한 한덩이의 빵,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아침마다 나눠 먹으며 살리. 머지 않은 날, 이 유학생활이 끝나 내 조국에 돌아가면 .... 오세영 시인 / 바람의 시 머나먼 서역西域, 한겨울의 고비고壁에서는 산후 우울증에 걸린 어미 낙 타가 갓 낳은 제 새끼의 수유授乳를 거부하며 홀로 칩거는 일이 종종 있 다고 한다. 척박한 환경, 궂은 기후 때문이다. 그럴 적에 유목민은 마두 금馬頭琴 하나를 그의 목에 걸어주는데 바람이 연주하는 그 악기 소리에 점차 마음이 누그러진 어미 낙타는 처음엔 그렁그렁 눈동자를 적시다가 종내는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제 새끼 찾아 품에 안고 따뜻이 젖 물린다. 들었다. 아아, 잘 못 살아온 한 생이었구나. 새집을 지으면서 나도 처마에 풍경風磬 하나를 매달아 놓았다. 바람이 쓰는 시. *유목민들은 이를 후스(Hoos) 요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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