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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건청 시인 / 모란을 보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4.

이건청 시인 / 모란을 보며

 

 

모란꽃이 피었다

세르게이 에세닌,

그대 집 뜨락에 와서

울다 간 새들은

으스러진 핏빛

꽃잎 몇 개씩을

물어다 놓고 간 모양인데

세르게이 에세년,

가서는 오지 않는 것들의

아픈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꽃을 피워 올리고,

나이 어린 당신이

모란꽃 흐드러진 봄날 모두를

맨몸으로 떠받치고 있다

힘겨운 서른 살 당신이 오늘,

기진한 채

모란 큰 꽃잎처럼

저물고 있다

스카프에 목이 졸린

마흔 일곱 살 당신의 아내

이사도라 덩컨처럼 기진해서

툭, 툭 떨어져 내리고 있다

 

 


 

 

이건청 시인 / 네가 올 때까지

 

 

밤 깊고

안개 짙은 날엔

내가 등대가 되마.

 

넘어져 피 나면

안 되지

안개 속에 키 세우고

암초 위에 서마.

 

네가 올 때까지

밤새

무적을 울리는

등대가 되마.

 


 

이건청 시인

1942년 경기 이천에서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거쳐 同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 받음.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가작 입선. 1970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이건청 시집』, 『목마른 자는 잠들고』 외에 다수 있음. 시선집에 『해지는 날의 짐승에게』가 있음.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등을 수상.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