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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성은 시인(대구) / 구름 난간에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5.

강성은 시인(대구) / 구름 난간에서

 

 

누가 흔들어댔던가_

잠깐 사이 배경이 뒤집혔다, 순식간에

 

햇빛의 어금니 몇 개가 부러졌고

꽃들은 여백도 없이 사라졌다

그늘로 몸 바꾼 지평, 그리고

구름의 지문이 새겨진 허공

 

하늘은 스스로 내려 조용히 옷 벗고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뒷모습이 보여준 언어는 침묵이었으나

장면을 읽어내는 바람의 결귀

유추하건데

아귀가 맞지 않는 생이란

평지와 구릉이 닿는 모서리, 사거리의 변

빛의 선, 어둠의 벽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 순간

지구를 누군가 반으로 접었는지

한 귀가 잘린 창백한 낮달이 납작 엎드려 있다

남반구에 걸쳐진 가운은 다소 헐렁하다

 

풍랑을 따라 흔들리다 보면

수평선을 넘 듯

과 음을 몰아오는 바람의 현, 그 음역으로

시간은 깊어간다

 

 


 

 

강성은 시인(대구) / 눈동자의 방

 

 

검은 눈동자의 방을 찾아든다 눈 감고도

익숙한 길이다

일찌감치 햇살을 살라먹고 입술을 훔친

달은 애꾸눈이다

 

차양 아래 눈꺼풀을 들추면 67.5° 만큼의 조리개가 열려

찰칵, 하고 눈인사를 건넨다

고여 있던 침묵이 발딱 일어났다 제자리를 찾는 동안

나는 커튼을 젖힌다

바깥 풍경이 오롯이 굴절되어 들어온다

 

맹점은 창 밖 흰 눈 속의 겨울눈이다

 

안개 속 미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급브레이크에 놀란

별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렇다

망막에 부딪힐 때마다

기억의 통로는 자꾸 좁아져서

소란스레 부풀던 한낮의 쟁점들이 제 무게를 잃고

부표처럼 떠다니다 소멸한다

하얗게 시력을 잃어가는 풍경, 풍경들……

 

아랫목은 오목눈이다

어둠을 덧입고 내가 꿈속으로 다리를 뻗는다

꿈의 덫은 완강하다 발버둥치는 동안

또 다른 눈동자가 자꾸 생겨나서

 

이 밤은 낱낱이 해부된다

 

동이 트기 전,

동공이 먼저 열리고

눈썹 끝에 슬어놓은 벌레의 알들은

내 눈 속의 외계外界의 상이다

 

 


 

강성은 시인(대구)

1965년 대구 출생. (본명: 강초우).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3미네르바신인상 수상. 2005월간문학동시 당선. 2016년 세계문학상 동시부문 대상 수상. 2021년 제1회 시산맥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에서 까지의 고백. 강북문화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