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선 시인 / 희망 운두 낮은 봄 햇볕 위에서 아이들이 제 신발 문수보다 큰 롤러블레이드를 신고 달린다. 아침 등교 길의 책가방 속에 하루 내내 꾹꾹 눌러 쓸 재생지 노트 속에 개봉 안 된 싱싱한 미래를 담고 달리는 저 철부지들 마치 하늘의 여울을 치고 달려 내려가는 새끼 연어 떼처럼 밝음 지나 더 밝음 속으로 가는 미성년의 지느러미들, 골목마다 도로마다 부표등처럼 떠서 깜박인다. 머지않아 시간 밖으로 튀어나가 시간 밖 떠돌이 정신으로 자유롭거나 제 마음 갈피에 어느 이역의 모험들을 적으며 그러나 다시 돌아오리라 몸피 큰 어른들로 돌아오기 위해 운두 낮은 봄 햇볕 위에서 아이들은 어제 오늘 아마도 내일 제 신발 문수보다 큰 긴 항적들을 신고 아침 등교 길을 달리리라. 홍신선 시인 / 시인의 초상 동네 이면도로 움푹 팬 웅덩이 빗물에 웬 자동차 엔진 기름 한 방울 누가 유실한 수급首級처럼 달랑 목 위만 내놓은 채 떴 다 둘레의 곁들 튕겨 내 가며 둥글게 안으로 안으로만 몸통 돌돌 말고 무릎 껴안은 그는 쉽게 저를 해체하거나 그 무엇에도 함부로 뒤섞이지 않는다 다만 몇 됫박 햇볕에 갓 지은 절처럼 살 깊이 내장된 휘황한 단청들을 내보일 뿐, 그런 기름 한 방울 만드느라 제 삶을 오로지 탕진했던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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