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칠환 시인 / 호랑이 잣 까먹는 한반도에서 은퇴한 시베리아 호랑이는 시호테알린 산맥에서 잣나무 연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잣나무 순림이 마지막 호랑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단다 ‘호랑이가 잣을 먹는다고?’ ‘담배 끊은 곰방대로 잣방울을 두들긴다?’ 나도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지 잣나무 숲에 고소한 잣이 쏟아지면, 멧돼지들이 간다, 사슴 무리가 간다 호랑이가 소리 없이 뒤좇는다 반칠환 시인 / 눈물의 국경일 세상 모든 생명들이 한날 한시 일제히 울어버리는 국경일 하나 갖고 싶다 뎅뎅- 종소리 울리면 토끼를 잡아채던 범도 구슬 같은 눈물 뚝뚝 흘리고, 가슴 철렁하던 토끼도 범의 앞가슴을 두드리며 울고, 포탄을 쏘던 병사의 눈물에 화약이 젖고, 겁먹은 난민도 맘 놓고 울어 버리고, 부자는 돈 세다 울고 빈자는 밥 먹다 울고, 가로수들도 잔잔히 이파리 뒤채며 눈물 떨구는, 세상 생명들 다시 노여워지려면 꼭 일 년이 걸리는 그런 슬픈 국경일 하나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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