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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성원 시인 / 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6.

정성원 시인 /

 

 

시간의 문을 열었다 겁 없이 쏟아지는 계절

계절은 다른 안색을 하고 더 깊은 계절에는 울울한 옷을 입은 얼굴이 따라올 테지

 

이별과 절벽과

마음과 영원함과

영원히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우리는 얼굴을 뒤집어쓴 외로운 사람

 

시간은 어제와 오늘을 데리고 그리운 마음을 데리고

계절의 문을 여는데

 

또 다른 계절이 겁 없이 쏟아진다

휘파람새 한 마리 따라오면 좋겠다

이윽고 환해지는 얼굴을 보았으면 좋겠다

 

흘러가고 흘러오는 동안

수많은 얼굴이 매달린 시간에 우리는 더러 시든 얼굴로 떨어지고

 

깨지는 하늘 깨지는 달 깨지는 손잡이

얼마의 오늘과 얼마의 환절기가 지난다

 

남겨진 몇 잎의 얼굴은 우리가 모르는 표정을 하고

이야기가 남은 얼굴은 무엇도 담고 싶지 않은 얼굴로

 

얼굴을 닫아버린다

 

계절은 환절기에 머물고

 

환절기는 안과 바깥이 동시에 열리는 문을 가졌다 기억과 망각이 왔다가는 하는 것은 어제에 살았고 내일에 살아야 한다는 말, 진실은 멀고 허상이 가까이 있다는 말

 

그러므로 문이란 닫힘도 열림도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이냐

 

계절을 찢으면 언제든 열고 닫히는 문으로

다른 얼굴이 다른 표정으로 다르게 들어가고 다르게 나오는,

 

계간문학과의식2022년 봄호 발표

 

 


 

정성원 시인

경남 통영에서 출생. 2020시산맥으로 등단. 15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 글도리깨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