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시인 / 겨울꽃 한 겨울 성복천을 걷는다 지난 가을 피었던 온갖 꽃들 오색으로 천변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것들 지금은 마른 덤불로 덮인 채 향기도 색깔도 버리고 언덕의 화석처럼 굳어있다 눈보라에 쏠리고 닦여 형체만 남은 그들 영혼이 떠난 얼굴 침묵하는 죽음이다 저들은 제 일생을 다하고 한 점 후회 없이 서 있을까 햇살아래 날들을 아프게 보내고 그동안 뜨겁게 뜨겁게 흔들렸는가 마음까지 샅샅이 내어주었는가 김행숙 시인 / 에코의 초상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아서 안개 속의 도시 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끝 모를 장례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어서 노을에 젖은 회색 구름의 띠 같고,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려서 검은 새떼들이 저물녘 허공에 펼치는 어지러운 군무 같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 있는 얼굴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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