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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승호 시인 / 밤의 자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7.

최승호 시인 / 밤의 자라

 

 

긁어댄다, 대야를

내 청신경을 긁어댄다

시마詩魔에 끄달리며 무슨 글을 쓰는 것이냐고

내 글쓰기를 긁어댄다

밤늦도록 잠자지 않고

대야를 긁어댄다

벅벅 긁어댄다, 긁어댄다,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간다

대야의 자라는

목을 딱딱한 등딱지에 집어넣고

나를 관찰한다

자물통처럼 생긴

자라야

네가 껍질을 벗어놓고 글을 써볼래?

나는 네 대신 늪으로 들어가

흐린 물 속을 알몸으로 헤엄칠테니

 

 


 

 

최승호 시인 / 말죽거리 주유소에 고독이 찾아온다

 

 

말죽거리 주유소는 말죽거리에 있다

말죽도 말죽통도

말대가리도 없는 말죽거리

한밤중 말죽거리 주유소에 고독이 찾아온다

길 잃은 말처럼

눈먼 고독이 찾아오는 것이다

말죽거리 주유소엔 대평원의 하늘이 없다

굵은 별들이 서늘하게 내려오는

지평선이 없다

창밖을 망국의 눈으로 내다보는

고려인의 후예

알바노인이 있을뿐

 

 


 

최승호 시인

1954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 춘천교육대학 졸업. 1977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대설주의보』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세속도시의 즐거움』 『회저의 밤』 『반딧불 보호구역』 『눈사람』 『여백』 『그로테스크』 『모래인간등과 산문집으로 황금털 사자』 『달마의 침묵』 『물렁물렁한 책. 1982'오늘의 작가상', 1985'김수영문학상', 1990'이산문학상', 2000'대산문학상' 수상.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