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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지우 시인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7.

황지우 시인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시인 / 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黃芝雨) 시인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본명 황재우(黃在祐).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 문리대 문학회에서 문학활동을 시작.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0중앙일보신춘문예 입선, 문학과 지성에 수필 등단.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김수영문학상, 백석문학상 외에도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2006년 옥관문화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