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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다인 시인 / 국지성 황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8.

정다인 시인 / 국지성 황사

애무

 

 

심장의 안쪽부터 초록은 사라진다

그 위로 얼룩의 뒷면처럼 망각이 번진다 너를 안을 때마다

눈동자 속에 들어차는 사막을 건너 밤이 왔다

 

외눈박이 시야처럼 조금씩 비껴간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흐려진다 낙타의 혹을 채운 것이 눈물이 아니듯 너의 절정은 모래로 만든 노래였다

 

읊조리듯 너를 읽는 밤,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파리한 영겁

 

고래의 뼈가 전설로 묻힌 땅을 딛고 너는 내 안으로 들어온다 바다였던 몸을 부풀리며 까맣게 몰려오는 작은 날개들, 사라진 물비늘과 고래의 울음이 뒤척이고 있다

 

아래로, 까마득히 위로 너를 껴안고 숨을 몰아쉰다 너의 몸은 비늘이 덮인 서늘한 정적, 깨어나지 못한 숱한 밤들의 아름다운 수의

 

한 쪽 눈만 가진 은둔자의 얼굴로 우리는 서로의 몸을 잃는다 뿌옇게 흐린 유목의 눈동자를 뒤로 한 채 초록은 초록이어서 가장 슬픈 색채로 사라졌다

 

흙비로 쏟아지는 너의 말이

바다를 잃은 고래의 영혼처럼 나를 데려간다 아래로,

까마득히 위로

 

살결 속에 파묻힌 차가운 음계 미를 읽는 밤,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너의 호흡

 

식어가는 불모의 심장을 부비며

세상의 끝에서 떠돌고 있는 우리라는,

 

팔다리가 고독하게 얽힌 이 범람을 누가 거두어들일까

 

―​『현대시, 201511월호

 

 


 

 

정다인 시인 / 유실물 센터에서

 

 

너를 찾아 나서는 길은 바람 너머에 있었다

1인분의 고백을 받쳐 들고 두리번거리는

1인분의 쓸쓸함이 터벅터벅,

아무에게도 닿지 못한 꽃가루가 없는 독백이 날렸다

팔을 뻗어 바람의 살들을 부비며

1인분의 고백이 식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햇빛으로는 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물건을 찾는

어느 일요일의 무기력처럼

너는 아무 곳에도 없었고 아무런 실마리도 없었다

 

잃어버린 것들 속에는 시간이 채집되어 있다

 

마른 날개와 더듬이가 부서진 채로 흩어져 있는

유실물들의 지도를 더듬거린다

 

익숙한 풍경 속으로 날아드는 작은 곤충들의 날갯짓

나는 그 속에서 꿀을 핥듯 너를 기억한다

굳어가는 1인분의 고백을 할짝할짝,

 

시간은 무색무취여서 기꺼이 쓸쓸해지는 것일까

 

버려진 마음들이 궁리도 없이

서로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커튼이 드리워진 어느 일요일의 어두컴컴한 구석처럼

흰 나비 한 마리가 앉았다가 간 꽃대처럼

나는 흔들리면서 울고 있다

 

바람 너머의 일은 바람 너머의 일이어서,

잃어버린 너를 향해 오늘 꽃이 핀다

 

― 《예술가, 2018년 여름호.

 

 


 

정다인 시인

2015시사사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여자 k(한국문연, 2017)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