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신동집 시인 / 목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0. 8.

신동집 시인 / 목숨

 

 

목숨은 때 묻었다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表情)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광년(億萬光年)의 현암(玄暗)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砲煙)의 추억(追憶)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體溫)에 젖어 든 이름들

 

살은 자()는 죽은 자()를 증언(證言)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告發)하라

목숨의 조건(條件)은 고독(孤獨)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 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많은 시공(時空)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白鳥)는 살아서 돌아오라.

 

-<서정의 유형>(1954)

 

 


 

 

신동집 시인 / 노을

 

 

더없이 날은 가고 없다

잔잔히 번지는

수먹물의 노을

좋았던 날은 이러저리 가고

어디로 제비는 날아갔는가

날은 어둑하여라

하르라니 떠는

비늘구름 하나

좋았던 날은 하마 가고 없고

지나고야 비로소

그지없는 노을

파르라니 떨며 날은 저문다.

 

 


 

신동집(申瞳集) 시인 (1924~2003)

1924년 경북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거쳐 1959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 경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1948<대낮>이라는 시집으로 문단에 나옴, 1954<서정의 유형>으로 자유문학상을 받음. 1982년에는 계명대학교 외국어대학 학장을 지냄. 작품집으로는 <사랑에 눈뜬 자여> <염열에 끓는 돌이여> <추일별곡> 등이 있다.아시아자유문학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옥관문화훈장·세계시인상·대한민국예술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