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집 시인 / 목숨 목숨은 때 묻었다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表情)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광년(億萬光年)의 현암(玄暗)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砲煙)의 추억(追憶)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體溫)에 젖어 든 이름들 살은 자(者)는 죽은 자(者)를 증언(證言)하라 죽은 자(者)는 살은 자(者)를 고발(告發)하라 목숨의 조건(條件)은 고독(孤獨)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 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많은 시공(時空)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白鳥)는 살아서 돌아오라. -<서정의 유형>(1954) 신동집 시인 / 노을 더없이 날은 가고 없다 잔잔히 번지는 수먹물의 노을 좋았던 날은 이러저리 가고 어디로 제비는 날아갔는가 날은 어둑하여라 하르라니 떠는 비늘구름 하나 좋았던 날은 하마 가고 없고 지나고야 비로소 그지없는 노을 파르라니 떨며 날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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