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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진은 시인 / 추석날 아침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1. 26.

손진은 시인 / 추석날 아침

 

 

신나게 페달을 밟는 아이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바큇살도 덩달아 광채 뿜으며 공중돌기를 하는 아침

직진하는 트럭은 아직도 속력을 줄이지 못하고

 

붙들린 가로수의 눈초리들이

불타는 공중제비를 본다

 

소년의 손목시계가 일곱 시를 가리키는 아침

궤도에 진입하는 위성처럼

출렁이는 공기 속 소년의 얼굴은 여전히 붉고

그의 머리칼은 바람에 날리고

 

셔틀콕인 양 소년을 튕겨 올린 덤프트럭이

끼익,

도로에 바퀴자국 남기는 동안에도

 

추석빔을 차려입은 설레는 소년과 자전거는 아직 공중에서

큰 원을 그리며

성큼성큼 난다

 

어! 어! 어!

 

아침의 때 아닌 공연에 놀라며

새들이 날아간다

 

그 어린 영혼을 받으려

옥색의 공기들이 화들짝!

가슴에서 둥근 손을 꺼내드는 추석날 아침

 

 


 

 

손진은 시인 / 소매치기

∼ 시인을 위하여

 

 

그는 돈이 어디에 있는지

기차게 안다

껍질 속 알갱이들의 두근거림과 한숨

가장하는 무표정까지

표적의 움직임이 아니라

옆 사람의 시선, 소란이 만들어 내는 공기 속

폭발의 중심에 놓여 있는 불붙는 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배경 속에 녹아 있다가도

그는 달뜬 풍경 속

구멍을 뚫고

마침내 다른 이 가슴으로 대로(大路)를 낸다

그때 배경이 풍경을 불붙였다

뒤늦게 화들짝,

우리가 빈주머니의 허전

더듬고 잇을 때

가짜 주민인 듯 가가호호의 문밖에서

마음 갈피만 다만!

서성이고 있을 때

 

 


 

손진은 시인

1959년 경북 안강  출생. 경북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 및 同 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돌〉이 당선되어 등단. 현재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음. 시집으로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 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가 있고, 그밖의 저서로는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한국 현대시의 정신과 무늬』등이 있음. 현재 경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