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훈 시인(평택) / 황천반점(黃泉飯店)에서
누구나 홀로 죽음과 길 떠나는 세상 얼키설키 뒤얽혀 지지고 볶고 산다 비굴 한 접시와 치욕 한 접시로 하루치의 치사량을 견디며 굽은 숟가락으로 하루씩 목숨을 퍼먹는다 무릉도원을 찾아 헤매다 삼거리 갈림길 가 황천반점에 몸을 부린다 마당 한복판 늙은 나무 아래 젖을 물리는 어미개가 얼마나 혀로 핥았나 밥그릇에 빛이 난다 나직한 지붕 아래 불처럼 뜨겁게 소리치며 지지고 볶는 부부 서리서리 얽힌 면 한 접시 뚝딱 내와 내 몸을 모신다 볶은 면 한 접시, 산 자의 한 끼 깨끗이 비운다 세상 한 귀퉁이 황천반점 저승길 마지막 식사 다시 예 와 들고 싶다
이윤훈 시인(평택) / 등부터 겨울이 온다
등부터 겨울이 온다 반쯤 열린 뒷문의 귀가 마른 풀 살랑이는 산그늘 쪽으로 기울고 웅덩이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한다 그대의 등이 설핏 보였을 때 그곳이 그대의 속울음이 고였던 자리라는 걸 나의 벽지라는 걸 시린 등으로 알았다 그대 없어 등이 더 어둡고 시리다 뒷문 곁 강아지 등에 손을 얹는다 앞산 뒤편으로 아직 남은 빛이 환하다 한때 비겁하게 비수를 감춘 적이 있다 내 등에 통증이 왔다 내 등이 얼마나 가파른지 지나는 바람이 일러주었다 가끔 내 등에서 벌레 먹은 가랑잎이 서걱인다 이제 쓸쓸한 등으로 나를 다 보이고 싶다 서글픈 일로 서글프고 싶다 어둠이 오고 저마다 제 깊은 곳으로 들어선다 군불을 지펴 지붕 위로 순한 연기를 피워 올려야겠다 겨우내 그대의 등에 곤히 등을 대야겠다
-시집, <생의 볼륨을 높여요>.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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