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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경훈 시인 / TOTO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8.

정경훈 시인 / TOTO

 

 

긴 표류를 끝내면 당신의 섬으로 마리화나를 던지겠습니다

 

재회하기에는 깊고 먼 해수

공백에서 가장 빛나는 자갈을 반으로 갈라 열거합니다

 

불가해성의 당신

불가사리 당신

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를 위해

불가사리가 되어

불 불 불 불

몸 몸 몸 몸

기름을 부어

불사른 당신

 

긴 방황을 끝내면 당신의 섬으로 마리화나를 던질 예정입니다

 

당신의 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를 위해

불법을 도모하여

마비란 것을 설명합니다

 

(자기야, 치료용 대마는 합법이니까 훔칠까 생각 중이야 망 좀 봐줄래? 도와줄래? 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를 위해·····)

 

당신은 죽기 위해 울었고

산다는 것은 시시하지 않은 일이며

팔뚝에는 붉은 개미들이 가득했습니다

 

갈매기는 새우깡을 먹기 위해 손가락을 빨고

당신의 할 일은 때밀이를 끼고 빡빡

살 타는 냄새가 진실을 밝힐 때까지 빡빡

팔뚝에서 팔뚝까지만 우는 겁니다

흰붉은 때가 똥똥 떨어지고

 

옷을 입어주세요 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와 산책 나갈 시간입니다

 

(자기야, 끼룩끼룩 비웃는 것들은 사람도 아닌 거지? 그렇지? 이 죄가 발각되면 이 죄가 선처가 안된다면 비웃은 것들에게도 죄를 묻자, 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를 사모한 당신을 위해·····)

 

당신의 작고 늙은 개 티오티오를 위해

불법을 도모하여

마비란 것을 설명합니다

 

티오티오가 있으면 당신은 꾸준히 살겠다고

두 쪽의 자갈 중 하나를 던졌습니다

 

저의 콧등은 무너지고 기둥은 처절하게 패배하고

 

(시간이 흐른 뒤 시간이 지난 뒤 시간이 떠난 뒤 시간이 멀리 간 뒤)

 

기대하세요 기대하세요 기대하세요·····

나쁜 마음은 시시하지 않으니

당신의 좌절은 부디 시시하기를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2021년 10월호 발표

 

 


 

 

정경훈 시인 / TIME AFTER TIME

타임 애프터 타임1) 2) 3)

 

 

히야는 양을 세다 눈을 뜬 채로 양털을 덮고

양은 눈꽃처럼 새하얗고, 새하얘서 살을 부딪치고 싶다

양털은 보드랍고, 부드러울수록 금방 헤어질 것 같고

혼자가 되면 영혼이 사라진 것만 같아 가슴팍을 만지는데

맨몸을 훑으니 피가 묻어있다 피가 흐르니 갈증이 돋고

피와 갈증의 밴드는 나의 지하방이 연습실이니까

옹졸한 나는 그라베Grave, 잠. 자. 고. 싶. 어.

 

 선잠 속에서, 새까만 피부의 여자가 춤을 춘다 나는 선잠 밖에서도 새까매서 여자를 따라 스텝을 맞춘다 원투원투 원투쓰리포 포포원투 투투쓰리포····· 새까만 피부의 여자는 빠르게 발을 놀리고 화장을 지워야 새까매지는 나는 전연 따라 할 수 없다 앞굽으로 바닥을 때리면 뒷굽은 공중을 향하고 뒷굽으로 바닥을 때리면 앞굽은 반대를 향해 치솟는다 선잠 속에서도, 선잠 밖에서도 박자를 놓친 사이에 *델마와 루이스가 보이지 않는다, 함께 춤을 추던 친구들아 멀리멀리 아무도 모르는 세상으로 떠나갔구나, 나는 이 결말에 대한 잠꼬대를 시작한다 히야 히야

 

나를 부를 거면 이런 말로 속삭여줘

일어나 봐, 지금 바로 도망가게

 

선잠 속에서, 새하얀 피부의 여자가 연주하는 해금을 본다 나는 새하얗지 않아서 해금을 헤칠까 봐 응시하기만 한다 새하얀 피부의 여자가 연주하는 해금을 보고 있자니, 오른손 왼손 총합 세 개의 반지가 안구에 박히고 손을 보고 있자니 상처로 인한 흠집이 군데군데 그어져있었다 나는 새하얗지 않아서 나만의 흠집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게 되고 그건 마치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증명해야 했던, 딱딱해져버린 기저질환인 것이다 새하얀 피부의 여자는 거짓말만 무더기로 쌓여있는 날짜에 태어났고 나는 새하얗지 않아서 사 년의 한 번뿐인 생일을 피해서 태어났다 새하얀 피부의 여자와 만난 것은 황홀함의 도래이자 믿지 못할 만큼 거짓처럼 운명 같았고 나는 새하얗지 않아서 이것이 선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만 했다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 나의 먼 미래 또한 새까말 예정이기에 새하얀 피부의 여자가 연주하는 해금을 바라만 본다 나는 이제 잠잘 시간이 된 것만 같고 마지막으로, 히야 히야

 

가장 외로운 순간은 말이야, 내 울음을 내 오열을 내 이야기를 오롯이 혼자 듣고 있을 때란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1991).

 

1) 쳇 베이커Chet Baker의 음악에는 정적인 슬픔이 있다. 폭주하고 싶었던 슬픔 또한 이곳에 있다. Time After Time은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나는 쳇 베이커의 고백을 곱씹으며 모든 것들에 관한 고백을, 고백 속의 고독을, 고독 속의 상처를, 상처 속의 폭력을 경청한다. 이 하나 빠진 자리에서 흐르는 트럼펫 소리가 이따위 구멍 난 마음에 입술을 맞춘다.

 

2) 시간은 사실 느리다. 우리가 너무 빠르게 달릴 뿐이지. 이건 나의 거짓말.

 

3) 닳고 닳아, 내 손끝이 닳고 닳아 끝끝내 너의 손과 닿기까지. 우린 앞으로 닮고 닮아서 음악을 하고 시를 쓰고 춤을 추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겠지. 우리는 상처를 받으며 자란 사람이 아닌 상처로 인해 태어난 사람들. 사람들 말고 사람 둘, 이렇게 쓰는 게 좋겠다.

 

3-1) 시간과의 대화, 끝. 거짓말도 끝.

 

계간 『다층』2021년 여름호 발표

 

 


 

 

정경훈 시인 / 떠나려 하는 모든 이에게*

 

 

새의 심장은 하나지만 마음은 무진장 많다

고공에 해저에 자유에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유에

 

햇살이 활처럼 굽어져도 새는 날 수 있지

풍속이 태양계를 관통해도 새는 날 수 있지

반대로 부는 칼잡이 비바람이 와도 새는

새처럼 날 수 있지

 

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간단한 수화 정도랄까

이백 원만 줄래요? 돈이 부족해서요 꽈배기는 칠백 원이에요

새의 첫 식사와 마지막 식사에 대한 이야기

 

새는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한다

날갯죽지를 소통의 수단으로 쓴 달까

부리 좀 잡아줄래요? 많이 울어서요 전봇대에 부리를 박고 싶잖아요

이건 보통의 새에 관한 이야기

 

새는 도망치고 싶었다

노동 중에도 오르고 내리는 중에도 열렬히 사랑하는 중에도

새답게 날고 싶었다

 

나를 닮은 새는 말하겠지

“다 내 탓이래요 내 잘못도 아닌데 다 내 탓이래요

말은 쉬워요 말이 쉬워서 나는 실어증을 앓다가

새가 돼요

날개 없는 새로 새롭게 태어나요 나를 닮은 새를 만나면

가슴으로 안아요 아니요, 나는 깃털을 다 뽑으면 성장하는 새에요

이제는 명치로 안아요 아니요, 우리 뼛속 깊은 줄기세포에서 만나요”

 

가까운 곳에서 너희는 말하겠다

“너는 삶을 버리고 도망갈 새가 아닌데

너는 원래 그런 새가 아니잖니

가지 말아 새야

가지 말아 새야”

이건 아무래도 무념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새의 심장은 하나이며 마음은 무진장 많다지만

새는 그냥 새다

 

 *가지 말아 혜야를 울부짖던 故종현의 소식. 내리지 않을 먹구름이 전국에 쏟아졌다. 그날 누나는 나의 몸통을 차며 쓱을 냈다. 선험적인 견해를 내놓자면 누나의 발길질 속에는 가지 말아 훈아, 젖은 꽃에 입혀줄 햇볕 한 벌이 담겨있었겠지. 하지만 우리의 소통의 수단은 상이하기에 서로의 언행을 재단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을 가진 채 홀로가 되었다. 자유를 가진 새와 새장 속의 새. 그리고 새들의 판이한 삶을 목도하는 사람들처럼. 나는 한 벌의 볕을, 젖은 꽃잎에 대한 연민을 오래도록 모른 척하고 싶다. 옛날 옛적, 배에 칼을 겨누어도 봤고 얼마 전에는 깊은 수면에서 깨어난 이방인. 매번 쉬운 말에, 그런 날카로운 칼에 심장이 갈라져도 끝끝내 숨을 붙이는 이방인. 언제부터였을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몰골을 비꼰 채로 골몰을 한다. 환희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내가 만약 살아야 한다면 이런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나의 이름일 뿐이다. 그도 그의 이름일 뿐이고.

 

계간 『다층』 2021년 여름호 발표

 

 


 

정경훈 시인

1996년 서울에서 출생.  2021년 《시인시대》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저 말고 모두가 노는 밤입니다』(샘앤파커스), 『아름답고 우아하기 짝이 없는』(시인동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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