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차애 시인 / 반성적 당근
오늘의 재료는 당근이예요
멀리가려고 발돋움하는 당근이예요 붉은 색을 반성하는 당근이예요 구름을 비우는 하늘처럼 다이어트가 필요한 당근이예요
모직 주름스커트 5000원 그린 스웨이드 쟈켓 20000원 커피주전자 12000원 김진명 추리소설 3권 3000원
스커트를 쟈켓을 차주전자를 추리소설세트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당근 얼굴을 내려놓으려고 발자국을 짤랑거리는 당근 번지는 맛이나 돌아서는 맛이 필요한 당근이예요
당근 좀 깎아 주세요 하품이 나온다면, 반값에 주세요
당신의 근처가 가장 어리둥절하다면 당근 당근이예요
모자나 옷들이 당신을 찌푸린다면 눈썹이나 웃음소리가 자꾸 당신을 떨어트린다면 오늘은 일단, 당근이예요
계간 『한국동서문학』 2021년 겨울호 발표
안차애 시인 /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빗소리처럼*
물방울의 망막에 맺힌 풍경이 건너온다 기억과 망원렌즈 사이의 온도일 수도 있다
반은 가려져 있고 나머지 반의 반절은 흔들리거나 흘러내리는 여자와 택시와 길들
식어가는 중인가 미열이 오르는 중인가 건너가는 중인가 돌아오는 중인가 어렴풋이 돋아나는 중인가 희미하게 스러지는 중인가
빨강 우산이 공중에 창을 낸다 노란 택시가 틈과 그때의 방향을 몰아가고,
순환구조형식이어서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눈송이와 빗방울이 길을 묻지 않듯 점, 점, 점 휘날리는 목적지들
왼쪽 귀를 간지럽히는 빗소리처럼 내 안에서 떠도는, 창문 밖의 온도들
* 사진작가 사울 레이트의 다큐 중에서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22년 여름호 발표
안차애 시인 / 감각의 온도 -S에게
검은 말의 수위에 잠겨있었다 납작 눌린 것이 기어이 뾰족해진다
어둠에서 젖 냄새가 났다 한 방향을 만지려고 나머지 방향을 무너뜨릴 때 같이, 감각되지 않는 감각이 무럭무럭 자라났
다엄마는 금기어였으므로 안구의 뒤편이 대낮에도 자주 튀어나오고,
감각 없는 발목을 드문드문 꽂고 다니면 발열체도 없는, 이상한 온도가 떠다닌다
검정을 그었는데 순교자의 피처럼 하얀 생각들이 흘러나왔다 바탕색이 없어서 따뜻했다
엄마는 반대말이 없었으므로 막연하지 않은 말들이 자꾸 막연해졌다 키 대신 송곳니가 자라는 기분이었다
계간 『시와 문화』 2022년 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영식 시인 / 바다에서 시인에게 외 1편 (0) | 2022.12.08 |
---|---|
주선미 시인 / 천남성을 만나다 외 2편 (0) | 2022.12.08 |
김승기 시인 / 꽃씀바귀 사랑 외 1편 (0) | 2022.12.08 |
김민소 시인 /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외 1편 (0) | 2022.12.08 |
조영심 시인 / 꽃그늘 외 2편 (0) | 202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