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 시인(울진) / 팽목
밤새 달려와 첫 끼를 먹는다 살아야겠다는 본능은 얼마나 갸륵한가 펄럭이는 창밖 주검의 표식들 앞에서 마주 대한 밥 누구는 천일 동안 젖은 눈물에 말아 먹고 누구는 천 일 동안 젖은 채 그리웠을 지상의 따뜻한 밥 한 그릇 생사를 가르는 경계 같은 한 덩이 밥 놓고 갸륵한 본능 뒤에 감춘 목숨은 이렇게 무참하다 뜨거운 국물을 넘기며 뱉어내는 생선가시들이 산자를 향해 쏟아내는 뾰족한 말 같다 실낱처럼 내리는 빗속 방파제 끝 누군가 무릎을 꿇는다 고개를 돌려도 숨길 재주 없는 슬픔 코끝 시리고 눈가가 뜨끈해진다 명치 끝에 걸리는 밥 한술 뜨러 밤새 달려왔나 이게 다 이놈의 밥 때문이지 싶어 상을 물리고 나섰는데 방파제 끝에 걸린 한 문장 “따뜻한 밥해서 같이 먹고 싶다”이 기가 막힌 문장 앞에 누군들 무릎을 꿇지 않으랴
김명기 시인(울진) / 인도주이적 안락사
죽은 개를 거두고 돌아와 소주 한 대접 마시고 잠들고 싶은 밤 길거리에는 수 없는 불길함이 돌아다니고 사는 게 왜 이런가 생각하다가 사는 건 늘 그랬지, 혼자 중얼거린다
밑동까지 베어낸 대추나무에서 새순이 자라듯 버려진 개를 거두어들인 거리에는 날마다 새로운 개들이 버려진다
감당할 수 없는 버림에 대한 보호소 준칙은 괄호 속 짤막한 지문 같은 한 줄 (인도주의적 안락사) 버려진 목숨을 앗아 가는 일이 어떻게 인도주의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개 몇 마리가 영문도 모른 채 인도주의적으로 죽었다
차디찬 냉동고에 주검으로 구겨 넣고 인도주의자들은 아무런 일 없다는 듯 흩어졌다 오래전 사라진 익명의 사람들이 자기 몸을 제물로 쓰고 남기고 간 우리처럼 개도 그렇게 살아가라고 태어난 목숨인데
갈색 속눈썹 긴 개가 미동 없이 눈 감을 때 채 식지 않은 몸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인도주의 어떤 날은 견사에 갇힌 개들을 다 풀어 주고 목줄을 맨 내가 갇혀 있는 인도주의적인 꿈을 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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