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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인원 시인 / 낙타에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2. 10.

이인원 시인 / 낙타에게

 

 

물컵에 담긴 허연 양파 뿌리

 

눈물도 수경재배가 되나

 

껍질이 너무 얇아

겹겹 싸매 둔 두려움

 

끝 모를 양파 속 사막

모래알 하나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낙타 등에 업혀 휘청 돌아오는 빗소리

 

긴 속눈썹에 쌓인 모래먼지가 무거워

낙타가 울 때

전갈 독 퍼진 일곱 개의 다리로

무지개 일어선다

 

수경재배 된 속눈썹으론

무지개를 볼 수 없는데

 

유리컵 하나에 어떻게 신기루를 담나

 

양파 하나로 어떻게 슬픔을 경작하나

 

 


 

 

이인원 시인 / 처방

 

 

집 떠나는 엄마는

매미허물 벗듯 옆구리를 찢고

자신을 한 겹 벗어두고 간다

 

볼리비아 안데스산맥에 사는 치파야족

엄마는 막내만 업고 칠레로 돈 벌러 가고

아빠와 남겨진 사내아이 둘,

엄마가 보고 싶다 조르면

엄마 옷을 빤 물을 먹인다고

효과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단호히 “그럼요” 라고 대답하는 젊은 아빠

 

차마 발걸음 떼놓지 못한

엄마는 대신

살점 떼어내듯 아프게아프게

눈물범벅 영혼 한 벌

벗어놓고 갔다

 

 


 

이인원 시인

1952년 경북 점촌에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199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마음에 살을 베이다』, 『사람아 사랑아』, 『빨간 것은 사과』 등이 있음. 2007년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